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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사
- 저자 : 이영옥
- 출판사 : 책과함께
책소개 지난 두 세대 동안 중국이 걸어온 분투, 승리, 좌절, 재기의 현대사 중화인민공화국이 지난 두 세대 동안 걸어온 역사는 중국공산당의 분투, 승리, 좌절 그리고 재기가 이어진 과정이다. 중국공산당은 정부를 수립하여 경제기반을 구축했고,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실패로 인해 벌어진 대참사를 수습했으며, 개혁개방을 주도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G2국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중국인들은 이제 더 이상 죽의 장막 뒤에서 세계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격리하던 사람들이 아니다. 국가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다른 나라에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국제무대에서도 경제력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여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난 두 세대 동안 중화인민공화국이 걸어온 중국 현대사의 자취를 바탕으로 그 성취를 평가하고 좀 더 냉정하게 미래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난 2019년에 한국 학자의 시각으로 중국의 역사를 담아냈던 《중국 근대사》의 지은이 이영옥 교수가 이번에는 ‘중국 현대사’에 주목했다. 《중국 현대사》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부터 혁명세대 이후까지 국제사회에서 변화해온 중국의 위상과 성취를 깊이 있게 다루며, 미래 중국에 대한 전망까지 분야별로 세심하게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이 국내 독자들에게 ‘현대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통로가 되기를 기대한다. 저자소개 저자 : 이영옥 역사학자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남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로 청나라 이후 중국의 정치 구조가 변하는 과정과 그 의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중국 근대사》, 《견제받는 권력》이 있고, 공저로 《중국 번속이론과 허상》, 《북방민족과 중원왕조의 민족인식》, 《한중 외교관계와 조공 책봉》이 있다. 번역서로 《타인들 사이의 중국인》, 《근대 만주와 대한제국》, 《중국의 황태자 교육》, 《중국의 동북변강연구》,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 등이 있다. 책 속으로 머리말, 7~8쪽 일반인이 중국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서 그 역사를 알려고 한다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중국현대사를 살펴보는 것이다. 중국현대사는 가장 최근 중국의 역사라는 점에서 비교적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중국의 역사라고 하면, 진시황의 통일제국 건설이나 유비나 조조로 대표되는 삼국지의 시대를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한 흥미가 아니라 현재 중국 사회를 알고 싶다면, 우선 현대사의 전개 과정, 그 속에서 일어난 사건, 그 사건을 이끈 인물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국의 현대사와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중국인을 직접 만나고 교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장 중국공산당의 승리, 38쪽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여러 정치세력의 대표자들과 함께 톈안먼의 망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중국 전역에서 국민정부군이 산발적으로 저항하고 있었지만, 이미 승패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국민정부는 비밀리에 정부와 주요 기관들을 이전했다. 12월, 장제스는 50만 군대와 여전히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을 이끌고 타이완으로 달아났다. 일부 국민정부의 관계자들은 홍콩이나 미국으로 탈출했다. 중국공산당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던 국민정부군과의 내전에서 농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승리했고, 창당 28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의 권력을 손에 쥐었다. 2장 중국공산당 통치의 제도화, 47~48쪽 중국공산당의 통치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당·국가체제이다. 당·국가체제는 당이 국가를 다스리는 것(이당치국)으로, 독점적 권력을 지닌 정당이 중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책임정치를 구현하려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정당의 활동이 보장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공산당 이외의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일당독재로 비난받을 여지도 충분하다. 3장 냉전과 자력갱생, 86쪽 1957년 봄, 마오쩌둥은 처음에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는 너그러운 표정으로 쌍백운동을 독려했다. 하지만 가을이 되자, 계급의 이익을 위해 정풍운동이 이용되고 있다면서 대대적인 반우파투쟁을 시작했다.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은 처음부터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해 덫을 놓았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당과 중앙인민정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좋은 의도로 시작한 쌍백운동이 사회주의에 저항하는 개인과 집단에 의해 의도적으로 집단화를 방해하고 분열을 획책하는 데 이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당과 중앙 인민정부로서는 우파들을 인민들로부터 분리시키고 권위를 세워야만 동유럽과 같은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겼고, 정책을 수정하여 언로의 개방이 아닌 통제를 선택했다. 4장 대약진운동, 99~101쪽 1959년 4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류사오치가 제2대 국가 주석으로 선출되었다. 마오쩌둥은 중국공산당 주석을 계속해서 유지했지만, 형식적인 권력의 크기는 작아졌다. 1959년 여름, 루산에서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확대회의(7월)와 제8기 전국대표대회 제8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8기 8중전회, 8월)가 열렸다.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와 8중전회를 합쳐서 루산회의라고 부른다. 펑더화이는 과장된 미곡 생산량이나 잘못된 철강생산 방식으로 야기된 심각한 상황을 지적했다. 그는 국가와 당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혁명동지 마오쩌둥에게 좌경 일변도의 대약진운동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일부 당원들은 펑더화이의 의견에 동조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펑더화이의 편지를 공개하면서 우경 기회주의이고 당 중앙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난했다. 5장 문화대혁명, 138~140쪽 1967년이 되자 혁명의 열기는 더욱 거세졌다. 거리와 광장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혁명계급들은 그들대로 자신의 순수혈통을 증명하고, 그렇지 않은 계급들은 혁명성을 입증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노동자들도 혁명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문혁16조〉를 근거로 파리코뮌을 본떠서 낡은 권력을 대체하는 인민자치조직을 만들었다. 2월에 등장한 상하이인민공사(상하이코뮌)가 대표적이었다. 상하이인민공사는 인민들이 각급 정부로부터 권력을 빼앗아서 장악하는 탈권 운동을 전개했다. 4월 1일, 《인민일보》에는 류사오치를 당내 최대의 실권파로서 중국의 흐루쇼프라고 공격하는 글이 실렸다. 류사오치와 덩샤오핑 등을 공격하는 집회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6장 불신의 시대, 155쪽 린뱌오라는 버팀목이 사라지자, 조정정책을 주도했던 실용주의자들이 저우언라이와 함께 다시 주도권을 회복하는 듯이 보였다. 1971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은 유엔 상임이사국의 자리를 차지했다.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여전히 중미관계는 안개 속에 있었지만, 이로써 관계개선의 돌파구가 열리게 되었다. 린뱌오가 사라지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가시화되면서 문화대혁명으로 비판받던 인물들도 복귀했다. 1972년 1월, 공산주의청년단 주석 겸 산시성 제1서기였던 후야오방의 이름이 《인민일보》에 보이기 시작했다. 4월, 덩샤오핑이 저우언라이의 도움으로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7장 계획과 시장의 양립, 187쪽 실사구시는 마오쩌둥이 사라진 시대에도 여전히 마오쩌둥의 박제된 시신을 끌어안고 정치적 이익을 꾀하는 인물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 인물은 바로 화궈펑이었다. 덩샤오핑은 이제 화궈펑의 주변 인사들이 아니라 화궈펑을 겨냥하고 있었다. 한편, 화궈펑과 왕둥싱, 우더, 지덩쿠이 등은 모두 문화대혁명 시기 당과 군대의 원로들이 숙청된 틈을 타서 요직을 차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인방처럼 거리의 혁명이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에 반대했다. 하지만 마오쩌둥에 기대는 것 이외에 특별한 정치적 자산이 없었다. 따라서 마오쩌둥을 비판할 수도 없었다. 사실, 그들의 운명은 당과 군대 원로의 지지를 받던 덩샤오핑을 다시 복귀시켰을 때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덩샤오핑 등은 사인방의 제거만으로 과거가 청산되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8장 인민의 목소리, 227~228쪽 6월 4일, 광장의 아침을 깨운 것은 여느 때와 같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었다. 광장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탱크 소리, 줄을 맞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인민해방군의 발소리,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신음소리 등이었다. 이름 모를 남자는 맨몸으로 탱크 앞을 막아서는 용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 남자가 탱크를 막아선 것은 잠깐이었다. 광장에는 시위대 수백 명의 붉은 피가 뿌려졌다. 인민해방군이 인민에게 총을 겨눈 사건은 세계인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6월 9일, 덩샤오핑은 텔레비전 연설에서 군대가 동원된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공산당, 사회주의체제, 중화인민공화국을 전복하려 한 반혁명세력을 제거한 것이라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인민들은 침묵했다. 그 후로, 인민들은 오랫동안 6·4 톈안먼사건(제2차 톈안먼사건)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9장 거침없는 질주, 239~241쪽 1992년 1월 18일부터 2월 21일까지, 덩샤오핑은 한 달이 넘게 우한, 광저우, 선전, 주하이, 상하이 등 개혁개방의 상징적인 도시들을 방문했다. 그는 남부의 도시들을 순회하면서 개혁개방에 대한 발언을 쏟아냈고, 이것을 ‘남순강화’라고 부른다. 남순강화는 마오쩌둥이 반우파투쟁(1956)과 문화대혁명(1966) 직전에 창강을 헤엄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여론을 움직이고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던 것과 같은 정치적 행동이었다. 남순강화의 핵심내용은 11기 3중전회의 결정을 따르고, 13전회에서 제시된 “하나의 중심과 두 개의 기본점을 견지”한다는 것, “생산력, 국력 그리고 생활수준의 향상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유리한 제도와 정책은 사회주의”라는 것이었다. 세 가지 유리론은 먼저 홍콩의 언론매체를 통해 전 세계로 보도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지방 간부들은 덩샤오핑의 강화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개혁개방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보수적인 분위기는 일거에 바뀌었다. 3월 9일, 중앙정치국 전체회의가 개최되었고, 정식으로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10장 책임 있는 국가, 272쪽 농민과 노동자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희생해왔다. 그들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소득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주의국가라고 말하기 어렵다. 중국공산당은 과거 중국대륙의 왕조와 국가들이 주변국에게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세계의 강대국이 번영을 구가하다가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경제적 번영과 평화로운 질서를 위해 책임 있는 국가로서 행동해야 한다. 출판사 서평 중화인민공화국 수립부터 혁명세대 이후까지, 국제 사회에서 변화하는 중국의 위상과 성취를 담아내다 1950년대 이후 한국학계에서는 대체로 중국현대사는 신해혁명이나 5.4운동부터 국공내전 전후까지를 서술범위로 삼았다. 이러한 방식은 반세기 가까이 유지되었고, 비교적 최근이 되어서야 현대사의 연구범위가 넓어지면서 문화대혁명 시기가 다뤄지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지은이는 국내 한계에서 일반적으로 다뤄지는 방식과 달리 중국현대사의 범위를 앞에서 한 세대를 줄이고 뒤에서 한 세대 정도 더 늘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렇게 하면 중국현대사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부터 2010년까지 60여 년의 두 세대가 되고, 현재 대다수 중국인들이 살아왔고, 살고 있는 시대까지 다룰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중국공산당이 중국국민당에 승리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 과정을 시작으로,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혁명세대와 그 시대가 끝난 후 중국의 변화와 미래 중국에 대한 분야별 전망까지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연구자보다 중국에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들이 이 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선에는 깊이를 가지되, 흥미롭고 친절하게 서술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 책의 구성은 단순히 하고, 각 장은 독립된 주제를 다루도록 했다. 이러한 구성으로 독자들은 책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을 수도 있고, 흥미가 있거나 궁금한 부분을 순서에 상관없이 살펴볼 수도 있다. 각 장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다음과 같다. 1장 중국공산당의 승리: 국민정부에 맞서 승리를 쟁취한 중국공산당 1921년 7월 창당 이후 중국공산당은 코민테른의 도움을 받았고, 코민테른의 지시로 중국국민당에 협력함으로써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1927년 4·12쿠데타로 중국국민당과 결별하여 독자노선을 걷게 되었고, 국민정부의 탄압을 받으면서 노동운동과 혁명 활동을 지속했다. 1935년 10월, 국민정부군의 포위 공격에도 대장정을 거치며 생존했고,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국민정부를 견제하는 유일한 정당이 되었다. 1937년부터 8년 동안 일본의 침략에 맞서 국민정부에 협조하여 항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949년 10월, 국민정부와 무력대결에서 승리했고, 마침내 중국대륙의 가장 강력한 정치집단으로 우뚝 섰다. 2장 중국공산당 통치의 제도화: 신중국의 강력한 지도자 마오쩌둥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의 강력한 지도력에 의지했고, 외세로부터 자유롭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겠다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 열정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게 만들었다. 이제 권력은 공산당의 손에 들어왔다. 공산당은 중국에서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그랬듯이 그 권력을 유지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대륙의 인민이 주인인 나라이다. 공산당은 인민을 위해, 인민을 받들고, 인민의 나라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공산당의 통치를 제도화해나갔다. 3장 냉전과 자력갱생: 당·국가체제의 확립 중국공산당은 불굴의 의지, 피비린내 나는 전투 그리고 동지들의 희생을 통해 혁명에 성공했다. 과거의 구중국과 단절을 선언한 신중국이 등장한 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맞닥뜨린 것은 혁명과는 다른 어려움이었다. 구체제와 국민정부를 비판함으로써 챙길 수 있었던 정치적 이익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이제 중국공산당은 당·국가체제 아래에서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인민의 마음을 얻어야만 했다. 또한 외교라는 생경한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4장 대약진운동: 사회주의 경제를 향한 대약진의 좌절 1958년은 제2차 5개년 경제계획이 시작되고, 1959년은 건국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중국공산당은 혁명을 제도화하기 위해 권력기관을 정비했고, 농업의 집단화, 민간기업의 국영화 등을 통해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반대세력은 한국전쟁과 반우파투쟁을 거치면서 힘을 잃었고, 마오쩌둥의 권위는 높아졌으며, 당의 권력기반은 탄탄해졌다. 이제 중국공산당과 중앙인민정부는 당원과 인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중국의 거대한 도약과 전진, 즉 대약진에 착수했다. 5장 문화대혁명: 혼돈의 소용돌이 1960년대 초반, 중화인민공화국은 류사오치가 주도한 조정정책을 통해 대약진의 악몽으로부터 차츰 경제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대내외적으로 거대한 위기에 직면한 사회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린뱌오와 사인방은 마오쩌둥의 목소리를 키웠다. 전국은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혁명동지들 사이의 갈등은 권력투쟁으로 비화되었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인민의 분노를 자극했으며, 분노한 인민은 거리에서 무리를 이루었다. 국제관계는 국내정치의 도구가 되었다. 6장 불신의 시대: 문화대혁명이 남긴 깊은 상처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의 실패가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린뱌오와 사인방은 마오쩌둥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 그를 떠받들었다. 그들은 조정정책에 매진하던 류사오치 국가 주석에게 반기를 들었고, 마오쩌둥의 뜻을 받들어 사회주의를 지켜야 한다면서 학생들을 선동하여 거리로 나가게 만들었다. 거리의 문화대혁명은 1969년에 끝났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마오쩌둥을 숭배하던 인간들은 혁명이 계속되기를 희망했고, 그들의 권력 농단은 거리의 광풍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7장 계획과 시장의 양립: 개혁개방을 향한 움직임들 중국공산당, 중국혁명, 중화인민공화국을 자신의 분신과 같이 여겼던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인민들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권력의 세계에서 심장의 박동이 끝난 인물에 대한 애도의 시간은 짧았다. 반면 여전히 심장의 박동이 계속되는 인물들의 욕망은 강했다. 마오쩌둥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본격적인 권력투쟁이 시작되었다. 그 중심에 화궈펑이 있었다. 그는 전광석화처럼 사인방을 제거하고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행동했다. 하지만 권력투쟁에서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구도와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었다. 8장 인민의 목소리: 개혁의 그늘과 억눌린 인민의 목소리 1986년, 중화인민공화국은 기본적이고 새로운 경제체제의 기초를 확립한다는 목표 아래 제7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7·5계획)에 착수했다. 7·5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당시 덩샤오핑은 확고하게 권력을 장악했고, 경제발전이라는 목표가 분명했으며, 유연한 외교정책을 통해 대외관계도 원만한 상태였다. 하지만 위로부터의 경제개혁이 급속히 추진되고 경제체제가 바뀌는 과정에서 인민의 목소리는 억눌렸고, 경제의 주도권, 투자 과열, 물가상승, 분배 등의 문제는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다. 9장 거침없는 질주: 세계를 향한 중국의 거침없는 질주 10여 년 동안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 뒤에 톈안먼사건이 일어났고,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에서 뼈아픈 상처로 남았다. 일부 학자들의 부정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개혁개방의 흐름은 끊기지 않았다. 덩샤오핑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자본주의의 ‘시장’이라는 요소를 들여와서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 확고한 의지는 부유한 삶을 열망하던 인민들과 확실한 태도를 요구하던 국제사회에도 전달되었다. 그 뒤, 중화인민공화국은 한 세대 동안 세계의 경제, 정치 무대에서 거침없이 질주했다. 10장 책임 있는 국가: 중화인민공화국과 인민들 앞에 놓인 미래 중국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이제 과거와 다른 과제를 안게 되었다. 과거가 경제부흥, 정치안정, 외교협력 등을 추구하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대내외적으로 정치와 외교의 주도권을 쥐고 경제성장을 유지해야 되는 시대이다. 국내 인민과 국제사회는 당과 국가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당·국가체제는 성장과 발전의 시대와 다른경제, 정치, 외교 그리고 사회·문화적인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변화 된 환경 속에서 과거처럼 절대적인 권위를 통해 억압적인 방식으로 통치하는 것은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다. 중국공산당은 과거 중국대륙의 왕조와 국가들이 주변국에게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세계의 강대국이 번영을 구가하다가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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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실리콘밸리, 광둥을 가다
- 저자 : 김수영
- 출판사 : 삼성경제연구소
책소개 화웨이, 텐센트, DJI, 비야디 등 중국 최고의 첨단기업들을 탄생시킨 혁신의 허브, 광둥을 모르고는 중국 경제를 말할 수 없다! 국토 면적으로는 우리의 96배, 인구로는 27배나 되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한눈에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특히나 지역 간 발전 격차가 큰 탓에 자칫하면 평균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중국 경제를 제대로 알기 위해 반드시 지역별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런 관점에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해온 광둥성은 중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는 데 최적의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광둥성은 중국 대외개방 역사의 중심지로 적극적인 개혁개방 정책과 수출 전략으로 중국 내에서 32년간 GDP 1위를 차지해왔으며, 광둥성 언론들은 곧 한국의 GDP를 추월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이 책은 중국 산업과 기술의 혁신 현황을 가장 빠르게 보여주는 광둥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중국의 경쟁력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특히 광저우에서 선전을 거쳐 홍콩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차이나 실리콘밸리’라고 이름 붙이고, 직접 찾아가 보고 들은 중국 4차 산업혁명의 현장을 담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관심은 베이징과 상하이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중국 경제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광둥성 경제를 3년간 가장 가까이서, 가장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경험을 통해 베이징과 상하이라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진짜 중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묻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김수영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베이징의 대외경제무역대학교(UIBE)에서 한중 자국통화 결제 시스템에 관한 연구로 MBA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부터 3년간 주광저우대한민국총영사관에서 상무영사로서의 근무를 마치고 현재 기획재정부에서 공공정책국 윤리경영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2년 제46회 행정고시 재경직렬에 합격하여 기획예산처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예산실을 거쳐 기획재정부 관세정책관실에서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대외 협상에 참여했고, 이후 공공정책국에서 공공기관 개혁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파견근무를 하며 한국의 중장기 경제사회 발전정책들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주광저우대한민국총영사관에서는 시야를 넓혀 중국 경제의 현실을 직면하고 글로벌 경제 속의 한국 경제를 고민할 수 있었다. 광둥성에서 보낸 3년의 시간과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을 통해 중국 정부의 정책과 의지가 경제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출판사 서평 왜 광둥성에 주목해야 할까? 광둥성에서 2022년은 어쩌면 광둥성의 GDP가 한국의 GDP를 넘어섰음을 자축하는 축포를 쏘아 올리며 시작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올해 초, 2020년 GDP 1.61조 달러를 달성했음을 발표한 광둥성은 한국이 실질 GDP 기준으로 1.55조 달러를 기록하자 한국 경제 규모를 추월했다며 떠들썩했다. 이후 한국은행이 1.63조 달러로 명목 GDP 수치를 공식 발표하자 광둥성 언론들은 아쉬움을 달래며 축배를 한 해 늦추었을 뿐이라고 한국 추월을 자신했다. 비록 우리에게 광둥성은 중국 22개 성(타이완을 포함하면 23개 성)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일지라도, 광둥성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이처럼’ 뜨겁다. 40여 년 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면서 광둥성에 부여한 ‘아시아 네 마리 용’을 넘어서라는 과제를 완수하는 뜻깊은 순간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 우리가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실감하지는 못해온 중국 경제의 진정한 동력이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제를 해석하기 위해 좀 더 세분된 눈금자로 보다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모습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중국 경제가 살아 움직이는 현장에 더욱 밀착된 연구가 요구되는 지금, 이 책은 반가운 한 걸음이다. 32년 연속 중국 내 GDP 1위를 기록하며 중국 경제의 놀라운 성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광둥성! 광둥성이라고 하면 우리에게 조금 생소한 지역일지 모르나, 개혁개방으로 유명한 선전과 2010년 아시안게임을 개최한 광저우가 광둥성에 소재한 도시임을 알게 되면 중국 내 광둥성의 위상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광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일선도시(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의 절반을 거느린 지역으로, 1989년부터 지금까지 32년 연속 중국 내 GDP 규모 1위를 차지해온, 중국 경제의 놀라운 성장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광둥성에는 화웨이와 텐센트를 비롯하여 중국 경제의 성장과 혁신을 이끌어온 최고의 첨단기업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광둥성은 중국 4차 산업혁명의 요람으로서 중국의 미래를 선도하고 있다. 이처럼 광둥성이 중국의 산업 발전과 기술혁신을 대표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첨단기업들이 많아서가 아니다. 정부의 정책과 지원이라는 측면에서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광둥성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국으로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정책적 실험을 넓은 내수시장을 배경으로 과감하게 진행하고 있다. 저자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주광저우총영사관에서 상무영사로 근무하며, 광둥성 경제가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면밀하게 살폈다. 저자에게 광둥성에서 보낸 3년은 광둥성이 현재까지 어떠한 발전의 과정을 거쳤고 그러한 발전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무엇인지, 광둥성의 대표적 기업들은 어떻게 성장했고 그들이 가진 경쟁력은 무엇인지, 또 광둥성 정부는 기업과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어떤 정책적 지원을 펼치고 있는지 등등의 질문과 맞닥뜨린 시간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질문들에 답함으로써 중국 경제를 보다 실체적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광둥성을 통해 들여다보는 중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이 책의 1장에서는 ‘주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광둥성 경제성장의 과정을 설명한다. 가난한 농업성에서 제일의 경제대성으로 거듭난 광둥성의 성취는 중국 전체의 경제성장을 대표해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로서 그야말로 중국 경제성장 과정의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2장에서는 저자가 이 책에서 ‘차이나 실리콘밸리’라고 이름 붙인 지역의 주요 도시인 광저우, 선전, 후이저우, 둥관을 둘러본다. 더불어 중국과 광둥성 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 중인 웨강아오따완취(?港澳大??) 발전 전략, 즉 광둥성, 홍콩, 마카오를 하나의 거대 경제권으로 발전시키려는 전략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여다본다. 3장에서는 광둥성의 4차 산업혁명 실현 현황과 광둥성 정부의 정책적 지원 노력을 소개한다. 제조업과 서비스산업, 과학기술, 5G와 인공지능, 친환경 저탄소 산업으로 나누어 각 분야별로 현황과 문제점, 정부 정책 등을 다루고 있는데, 기승전결의 구성을 통해 광둥성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산업 분야를 어떻게 진단하고 분야별로 어떠한 정책조치를 통해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설계하고 있는지 보다 쉽게 살펴볼 수 있다. 4장에서는 차이나 실리콘밸리에서 경제성장을 이끈 주역들이라 할 수 있는, 광둥성의 주요 기업들을 소개한다. 특히 여기에 소개된 기업은 저자가 직접 방문한 많은 기업들 중에서 선별한 곳으로 광둥성, 나아가 중국의 혁신기업이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 밖에도 주광저우총영사관이 주최한 ‘신성장정책교류회’를 통해 한국의 분야별 전문가들이 자율주행, 드론, 인공지능 관련 기업을 방문하고 중국의 기술 수준을 분석한 내용도 담고 있다. 5장에서는 무엇이 광둥성의 성장을 이끌었는지 짚어보고 과연 앞으로도 이러한 발전요소들이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을지 분석한다. 저자는 정부의 적극적 지원, 경제발전을 우선시하는 실용적 문화, 젊은이들에게 도전을 자극하는 성공 경험, 홍콩과 마카오를 포함하는 거대한 시장을 광둥성 발전의 4원소로 지목하며 이를 통해 현재 한국 경제가 찾아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해볼 것을 주문한다. 중국 정부의 정책이 지방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책! 이 책의 쓰임새는 명확하다. 무엇보다 향후 경제 정책을 설계하거나 결정하고자 할 때 ‘중국’이라는 필수적 고려 대상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광둥성이 진행하고 있는 다양하고 과감한 정책적 실험들의 성공과 실패를 눈여겨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 또한 광둥성에 진출하고 싶거나 광둥성 기업과 경제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이들에게 실질적 참고가 될 수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기대를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 광둥성의 경제발전을 바라보고 분석한 시각이 중국 경제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접근 방법으로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중국 지방정부의 정책과 그 적용 현장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고 중앙정부의 정책이 지방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책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부록으로 실린 ‘중국에서 경험한 코로나19 팬데믹’ 역시 드물고 귀중한 내용이다. 광둥성의 한국 기업과 교민들을 지원하면서 겪은, 중국의 코로나19 대응 현장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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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지계
- 저자 : 정덕구 외 , 니어재단
- 출판사 : 김영사
책소개 “중국은 미래 한국의 가상의 적인가, 공존의 파트너인가?” 가치ㆍ생각ㆍ방법이 다른 중국을 극복할 전략과 생존 방정식 대한민국 대표 중국 싱크탱크 니어재단과 당대 최고의 중국 정치ㆍ외교ㆍ안보 전문가들이 2년에 걸친 기획과 탐구, 토론으로 완성한 생존, 자강, 국익의 길. “한국은 중국과 충돌이냐 예속이냐 공존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이 책은 새로운 현상을 가감 없이 종합 분석하고 새로운 생존 방정식을 모색한다. 한마디로 강성대국 중국을 극복하기 위한 비방서로서 극중지계인 것이다.” _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저자소개 저자 : 정덕구 고려대학교 상대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교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였으며,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 기획관리실장, 제2차관보, IMF 협상 수석대표 등을 거쳐 재정경제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및 국제금융연구센터 소장, 중국 북경대학교 초빙교수,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니어재단 이사장 및 중국 인민대학교 초빙교수, 고려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거대 중국과의 대화》(2004, 삼성경제연구소), 《키움과 나눔을 넘어서》(2006, 21세기북스) 등이 있다. 저자 : 니어재단 NEAR재단 동북아시아를 연구하는 순수 민간 독립 싱크탱크(Think-Tank)이다. 북경대ㆍ인민대 초빙교수, 중국 사회과학원CASS 정책고문을 지낸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 주도로 2007년 1월 설립되었다. NEAR재단은 혼돈과 충돌에 휩싸이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터프한 역학구도 속에서 한국이 생존해나가기 위한 기본전략을 집중 연구한다. 특히 디지털공산주의, 중화민족주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로 특징 지어지는 시진핑 시대 중국의 실체를 주시하며, 국적 있는 중국연구활동을 주도해왔다. ‘NEAR-TSINGHUA 한중 안보전략대화’, ‘NEAR 한ㆍ중ㆍ일 Seoul Process’를 매년 개최해왔고, ‘NEAR Watch Forum’, ‘NEAR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Forum’을 운영하고 있다. 매월 《NEAR POLICY BRIEF》를 발간하고, 매년 NEAR학술상을 시상한다. NEAR재단은 “비록 메아리는 없어도 세상에 격조 있는 울림과 외침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주요 저서로 《거대 중국과의 대화》,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 《기로에 선 북중관계》, 《한일관계, 이렇게 풀어라》, 《동북아시아의 파워 매트릭스》, 《THE KOREAN ECONOMY BEYOND THE CRISIS》, 《EAST ASIAN EXCHANGE RATE REGIME》, 《FOSTERING MONETARY & FINANCIAL COOPERATION IN EAST ASIA》, 《THE GLOBAL FINANCIAL CRISIS, FUTURE OF THE DOLLAR, AND THE CHOICE FOR ASIA》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중국의 실체와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대응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과연 앞으로 중국은 우리에게 가상의 적인가 아니면 공존의 동반자인가? 가치, 생각, 방법이 다른 중국을 어떤 전략과 생존 방정식으로 극복할 것인가? 이것이 한국에 던져진 현실적이고 기본적인 질문이다. _5쪽 지난 30여 년간 한중 간에는 보완적 생존관계와 산업관계가 형성되어왔다. 이것이 한중 관계의 공존의 틀이었다. 미중 간에도 공존과 협력의 틀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한중 관계의 공존적 발전에 큰 도움이 되어왔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공존의 틀과 보완적 생존관계는 급격히 약화되고 있고, 경쟁과 충돌의 요소가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한중 관계는 전환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중국과 충돌이냐 예속이냐 아니면 기존의 공존의 시대로 돌아가느냐의 생존적 기로에 서 있다. _4~5쪽 중국과의 충돌이나 예속의 시나리오를 피하고, 공존의 시나리오를 찾아내는 것은 고난도의 과제이다. 이제 한국은 강성한 팽창주의의 중국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의 주권과 생존권을 굳건히 지키며, 우리 나름의 넓은 공간 속에서 자주적인 외교적ㆍ경제적 선택을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 안정된 공존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_7쪽 중국의 굴기가 왜 미국에 위협이 되는가? 그리고 왜 우리나라나 세계에 위협인가? 중국의 굴기가 미국에 위험이 되는 이유는 미국적 질서와 가치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굴기가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이유는 상당히 다르다. 미국적 패권질서에 편입된 우리의 기본질서를 위협하고, 중국적 질서와 가치 그리고 중국적 국익을 우리에게 강요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_30쪽 우리의 외교력은 왜 취약한가? 한국은 오랫동안 세계 강대국에 포위되어 있는 지정학ㆍ지경학적 위치로 인하여 자유로운 외교 선택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한국이나 일본은 현대 국제사회에서 독자적 외교전략을 구사한 경험이 없다. 오랫동안 냉전의 틀 안에서 미국에 의존하며 생존해온 결과이다. 그러나 탈냉전 시대에 한국은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국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는 한국적 세계관을 지니고, 21세기의 생존전략을 모색하는 한국적 외교전략이 필요하다. _42쪽 21세기의 세력 전이 시대에 다시금 미국과 중국을 두고 명분론과 실리론의 분열적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주체적 인식을 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을 우리의 국익 차원에서 바라보며 접근해야 한다. _46쪽 중국의 굴기에 대응하여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의 정신세계에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 있는 운명론이다. 여기에서 빨리 벗어나 자강론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 이것이 한국의 미래 생존전략의 기본자세이다. _48쪽 한국은 중국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국가 정체성에 대해 확고한 원칙과 신념을 중국에 각인해야 한다. 그러려면 반도체 이외에도 미국과 중국이 모두 아쉬워하는 전략자산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누구도 한국이 미국의 동맹외교에서 가장 약한 고리라는 오판을 하지 않도록 원칙과 자세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 _49~50쪽 향후 중국은 국력의 신장, 팽창을 이루더라도 인본주의적 문명관이 지배하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도덕적ㆍ윤리적으로 열등 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다. 도덕률과 윤리관은 미국 등 서방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한국이 모든 국가와 협력하고 필수 불가결한 국가로 자생력을 확보함에 있어서도 인류 보편적 가치, 높은 도덕률과 윤리관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것이 갖추어진다면 주변 강국들이 함부로 경시하지 못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_51쪽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중국 대륙의 반도에 위치한 우리로서는 중국 등 그 어느 나라와도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전략적 선택의 핵심은 어느 한 나라를 적으로 상정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및 중국과 모두 전략적으로 공조하고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외교 영역의 발굴과 개척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미중 양국의 전략적 의도와 목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_156쪽 자강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국내 체제 정비가 최우선 과제이다. 국내 정치의 프레임에 갇히고 그 연장선상에서 외교ㆍ안보를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국제 외교ㆍ안보의 흐름에 역류해서는 안 된다. 중국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임은 틀림없으나 단단한 국민통합력 앞에서 그들의 압박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한국은 중국에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우리의 국가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원칙과 신념을 각인시켜야 한다. _408쪽 이 크고 다양한 나라를 시진핑 주석은 철통같이 일사불란하게 지휘하고 있다. 요즘은 AI나 빅데이터의 신기술을 통치ㆍ통제 수단으로 도입하여 국민 일상을 체크하고 있다. 무인기까지 동원하여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중국 특색 사회주의 세상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지난 80여 년간 세계를 제패해온 미국에 도전장을 내밀고 결사 항전을 독려하고 있다. _426쪽 출판사 서평 중국은 급변하고 있다. 디지털공산주의, 중화민족주의, 과학기술 중국몽이라는 새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였다. 중국은 어제까지 알고 생각해왔던 그 나라가 아니다. 중화민족주의는 중국 국민의 민족적 자존심과 연결되었고, 중국 국민도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대의 국민과는 다른 국민으로 변하고 있다. 그들의 현란한 용틀임은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이를 바라보고 있는 한국의 시각도 혼돈에 빠지고 있다. 한중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험난하고 복잡하며 난해해졌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복잡다단해졌다. 가치, 생각, 방법이 다른 중국을 어떤 전략과 생존 방정식으로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 한국에 던져진 중대한 질문이다. 중국과의 충돌이나 예속의 시나리오를 피하고 공존의 시나리오를 찾아내는 것은 고난도 과제다. 중국의 실체와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대응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이 책은 강성 팽창주의로 급부상하는 중국과 새 국면으로 치닫는 미중 충돌에 따른 위험을 진단한다. 중국의 용틀임 궤적을 추적하고, 중국에 가장 근접해 있는 나라 한국은 어떤 차원에서 어떤 전략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분석한다. 저자들은 그 대응 시나리오를 공존과 충돌, 예속으로 나누어 탐색하고 있다. 극중지계를 찾기 위한 입체적이고 폭넓은 현실 진단과 심도 있는 통찰을 제시한다. 우리의 정체성, 주권, 생존권을 지켜내면서, 공존의 길을 찾기 위한 전략을 모색한다. 이 책은 전환 시대를 맞고 있는 한중 관계의 제반 문제와 잠복된 갈등 요소를 들춰내 성역 없이 다루면서, 강성 팽창주의 중국을 극복하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 중국은 미래 한국의 가상의 적인가, 공존의 파트너인가? 중국의 힘과 본심, 그들의 실상과 셈법을 꿰뚫어보고 대응하라. 시진핑 시대, 중화민족주의의 중국몽이 팽창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미국은 21세기 들어 국력의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세계는 본격적인 세력 전이 시대를 맞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ㆍ지경학적 환경도 급변해가고, 한중 관계는 새로운 요소들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지난 30여 년간 한중 간 공존의 틀이었던 보완적 생존관계, 보완적 산업관계가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경쟁과 충돌의 요소가 커지고 있다. 한중 관계 또한 급격한 전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중국과 충돌이냐, 예속이냐, 아니면 기존 공존의 시대로 가느냐의 기로에 있다. 중국은 오랫동안 스스로 갇혀 있었다. 지금은 용틀임하고 있다. 세계 리더 국가로 서려 한다. 초강대국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위협하고 있다. 공존의 틀 속에서 순항하는 듯하던 한중 관계는 중국의 급부상과 함께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충돌 양상을 보이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이 책은 전환 시대를 맞은 한중 관계의 시급하고 난해한 제반 문제들을 성역 없이 다루고 있다. 중국과의 생존관계, 평화적 관계를 위해서는 우리 자신과 중국을 정확히 아는 것이 기본 전제다. 새 국면으로 치닫는 미중 간 갈등과 충돌, 이에 따른 한국의 지정학적ㆍ지경학적 위험을 파악하면서 중국의 용틀임 궤적을 면밀히 추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이를 위한 다양한 시각과 통찰, 논점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은 급변하고 있다. 디지털공산주의, 중화민족주의, 과학기술 중국몽이라는 새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었다. 중화민족주의는 중국 국민의 민족적 자존심과 연결되었고, 중국 국민도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대의 국민과는 다른 국민으로 변하고 있다. 중국은 어제까지 알고 생각해왔던 그 나라가 아니다. 그들의 현란한 용틀임은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이를 바라보고 있는 한국의 시각도 혼돈에 빠지고 있다. 한중 관계는 20세기 말 당시보다 더욱 험난하고 복잡하며 난해해졌다. 모든 것은 불확실하고 복잡다단해졌다. 중국의 용틀임은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그 용틀임 속에는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가? 지난 30여 년 동안 한중 간에 설정되어온 보완적 생존관계, 산업관계는 지속 가능한가? 중국에 가장 지리적으로 근접한 한국은 어떤 차원에서 어떤 전략으로 대응할 것인가? 한국은 앞으로 중국과 어떤 관계 방정식을 세울 것인가? 앞으로 중국은 우리에게 가상의 적인가, 공존의 동반자인가? 가치, 생각, 방법이 다른 중국을 어떤 전략과 생존 방정식으로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 한국에 던져진 중대한 질문이다. 중국과의 충돌이나 예속의 시나리오를 피하고 공존의 시나리오를 찾아내는 것은 고난도의 과제다. 중국의 실체와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대응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중국 앞에서 국력이 약해지거나 국민정신이 흔들리면 예속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저자는 “이제 한국은 공존과 충돌, 그리고 예속의 시나리오로 나누어 그 기초여건과 대응전략을 탐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극중지계(克中之計)를 찾기 위한 심모원려(深謀遠廬)에 혼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강성한 팽창주의 중국을 극복해야 한다. 주권과 생존권을 지키면서 우리 나름의 공간에서 자주적인 외교적ㆍ경제적 선택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인식과 다양한 전략, 시나리오 탐색이 요구된다. 그때에 비로소 중국과 안정된 공존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이 책은 그 길을 다각적으로 심도 깊게 탐색하여 제시하고 있다. 2. 정확한 정보, 유연한 대응, 철저한 국익 통찰! 미중 충돌과 그 사이에 낀 한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번영과 공존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속하기 위한 전략 탐구서. 이제 우리는 중국에 대한 인식의 틀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가?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은 중국 자체의 굴기인가, 시진핑이라는 제왕적 지도자인가? 시진핑 체제의 내구성은 어느 정도이며, 시진핑 주석은 얼마나 장기집권할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이 과연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강국으로 부상할 것인가? 미국의 국력은 지속적으로 약화할 것인가? 시진핑 주석이 자신만만한 근거는 무엇인가, 그의 대미항전은 장기집권을 위한 수단은 아닌가? 미중 간 신냉전은 어떤 경로로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한국은 본격적 세력 전이 시기의 한복판에서 어떤 대응체제를 갖추고 있는가? 한미동맹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형질 변경될 것인가? 한미동맹은 시진핑 시대 중국의 위협을 막아줄 방패로서 충분한가? 한국의 경제력ㆍ외교국방력ㆍ사회통합력은 거대한 파고를 헤쳐나갈 힘을 확보하고 있는가? 이 책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중국은 미래 한국의 가상의 적인가’라는 합리적 의구심을 지닌 채 예속과 충돌의 시나리오를 그려냈다. 동시에 한중 간 미래 지향적인 공존의 생존 방정식도 세우려 시도하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가 무엇을 버리고 바꾸며 갖춰야 할 것인지 정리하여 성역 없이 제안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미중 분쟁의 격화와 그 사이에 낀 어려운 현실에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이 상황을 헤쳐나갈 장기전략 수립에는 적극 나서지 못했다. 우리가 미중 분쟁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국외자적 관망 속에서 중국의 잠복된 복속주의나 중국에 대한 잠재된 사대주의적 운명론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만만치 않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높은 리스크가 따르는 고난도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 국제질서는 본격적인 세력 전이 시대를 맞았다. 역사상 우리는 세력 전이 시대에 국론이 분열되고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붕괴된 경험이 있다. 이제 외교ㆍ안보 전략에서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한 때다. 다시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명분론과 실리론의 분열적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주체적 인식을 해야 하며, 국익을 잣대로 접근해야 한다.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은 분명 우리에게 위협이지만 동시에 중국의 부족한 점을 메울 수 있는 면에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중국에 대해 무엇이 우리의 강점인지, 또 어떤 기회가 열려 있는지 냉철한 사고와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은 중국 나름의 강점과 약점이 있다. 한국도 선진화된 중견국가로서의 장점이 있다. 이러한 점을 심층 분석해 한중 관계를 열린 관계로 바라보며 대응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이것은 진정 고난도 게임과도 같다. 이 게임을 성공적으로 풀어가기 위해 이 책은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의 핵심은 무엇인지,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집권 가능성과 미국의 공격 포인트를 분석한다. 한국을 미국 동맹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로 보는 이유를 설명하고, 한미동맹이 중국 위협에 대한 보호막이 될 수 있는 길인지 답한다. 막연한 환상이 만든 대중국 외교 프레임을 진단하고, 중국의 현란한 외교 전술에 휘둘렸던 한국 외교의 과거를 복기하면서 새로운 지혜를 탐색한다. 중국에 대한 잘못된 환상과 대중국 포비아를 파헤치면서 중국의 복속주의와 한국인에게 잠재된 사대주의의 실체까지도 꺼내어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과 최악의 관계를 피하는 법과 한국의 대중국 장단기 전략 목표를 제안한다. 그리고 ‘극중8계’의 전략을 제시한다. 이 책은 본격적인 세력 전이 시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한국의 난해한 방정식을 풀어가기 위한 국적 있는 중국 연구의 결과물이다. 당대 최고 전문가들이 심도 있게 기획, 연구, 토론, 분석하여 정리한 담대한 도전이자 제안이다. 3. 확대된 한중 간 국력 차이와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하고 한국의 미래 생존 방정식을 푸는 열쇠는 무엇인가? 중국은 지역의 강국이 되었다.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불편한 진실이다. 대외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중국의 시도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자체도 힘든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게다가 시진핑의 머릿속에는 복속주의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2017년 4월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시진핑은 한반도를 중국의 속국과 같은 지역으로 소개했다. 여기에는 중국이 한반도의 분단을 지렛대 삼아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증대할 수 있다는 사고가 내포되어 있다. 수천 년 역사를 같이하며 생존 관계를 이어오는 동안 두 나라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한계와 벽이 생겼다. 그 한계와 벽은 시대 상황에 따라 분쟁과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타협과 공존의 길로 연결되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중국의 존재와 실체를 인정하고 그들로부터 주권과 생존권을 지키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이 책은 그 길을 함께 탐색하기 위한 엄중한 시도이다. 저자들은 “외교ㆍ국방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국을 과도하게 의식해서도 안 된다”고 제안한다. “주권국가로서 우리의 주권과 생존권을 보호하는 데 집중하면서 대중국 전략 마련에 치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중국 인식을 냉철하게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느 나라도 이제 중국의 도전을 독단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우리 외교는 우리와 가치, 정체성이 유사한 국가들과 연대 및 동맹 관계를 계속 강화하고 유지해나가야 한다”고 분석한다. “우리가 중국에 대한 미신과 공포심에서 벗어나려면 국적 있는 중국 연구로 체득한 자기 입장을 확실히 세우고 담대한 외교자세를 확립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러나 중국의 정치체제와 외교생태를 고려할 때 중국에 할 말을 다 한다고 하더라도 자존심을 지나치게 건드려서는 안 된다. 중국인은 자존심과 명예를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겸손하지만 당당히 우리의 논리를 지속적으로 밝혀야 한다”라며 구체적인 행동지침과 태도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중국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로 하는 전략무기를 많이 보유해야 한다. 반도체뿐 아니라 중국이 따라올 수 없고 우리에게만 있는 핵심, 원천을 다수 확보하는 것이 중국의 복속주의 외교압력에 대응하는 힘이 될 것이다”라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자강을 위한 전략적 접근과 실천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 “한국이 비록 물리적 차원의 국력에서는 중국에 비해 작은 국가이지만, 소프트파워에서는 큰 나라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중국보다 매력적인 국가이자 보편국가이다. 경제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중국 역시 한중 관계의 발전이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의 발전에도 불가결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이 같은 점에서 당당하고 정상적인 외교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같은 탐구를 종합, 극중8계(克中八計)를 제시한다. 1계. 중국에 대한 잘못된 환상과 공포(Phobia)에서 벗어나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 주권과 생존권을 확고히 지킨다. 2계. 중국의 실체를 깊고 철저하게 파악하고 국적 있는 중국 연구 체제를 갖춘다. 3계. 경제적으로 중국에 필수적인 국가가 되고, 다각적인 자강의 길을 찾는다. 4계. 중국과 충돌, 예속을 피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고, 상호 공존의 길을 찾는다. 5계. 한반도 경사외교에서 벗어나고, 중국에 대한 경사외교에서 탈피한다. 6계. 한미일 공조체제와 한중일 협력구도를 동시에 발전시킨다. 7계. 미중 간 장기 신냉전 체제에 대응하는 외교ㆍ안보 전략체계를 갖춘다. 8계. 국격에 맞는 외교ㆍ안보 역량과 인프라를 키운다. 이를 위해 국가 차원의 투자를 확대한다. 4. 지금은 중국에 대한 국적 있는 연구가 필요한 때. 대한민국 대표 중국 싱크탱크 니어재단과 당대 최고의 중국 전문가들이 2년에 걸친 기획과 탐구, 토론으로 완성한 생존, 자강, 국익의 길. 중국의 내면세계는 베일에 싸여 있다. 의사결정 구조는 수직적이다. 그 베일을 벗겨내고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를 파고드는 것이 중국 연구의 사명이다. 중국을 깊이 아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한국의 중국 연구는 일천하다. 학문적 교류도 제한적이다. 지식과 정보의 제한에 갇혀 있다. 시진핑 시대에 이르러 중국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군사산업뿐 아니라 국가관리, 국내정치 통제수단으로도 소프트웨어기술을 최대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내밀한 정보나 지식을 철저히 통제하고 일반 학자나 지식인의 접근을 막고 있다. 결국 중국이 공개한 자료나 미국 등 선진국의 중국 연구 결과에 의존하다 보니, 우리의 중국 연구는 중국의 내면보다는 표피의 문제, 면과 입체의 문제보다는 점의 문제에 머무르고 있다. 게다가 개인 성향에 따라 연구 결과가 파편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중국에 대한 연구나 정보의 집적이 부족하다. 중국이 공격적이고 팽창주의적 굴기를 계속하고 한국과의 국력 비대칭성이 확대될수록 중국을 깊이 있고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중국에 대한 정보와 지식의 파편화를 막고 국론을 통일 결집해나가려면 국가 차원의 중국 연구를 조직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한민국 대표 중국 싱크탱크인 니어재단과 당대 최고의 중국 경제 전문가들이 2년에 걸친 기획과 탐구, 토론으로 완성한 생존, 자강, 국익의 길에 대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이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NEAR재단이 중국 연구에 몰두해온 지난 15년 동안 어깨에 올려진 무거운 짐은 국적 있는 중국 연구를 집대성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모든 난관을 극복해가면서 중국을 입체적ㆍ동태적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본심을 파고든다.”(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중국에 대한 이야기는 대하소설 같기도 하고 천일야화 같기도 하다. 베일에 가려 있기도 하고 특히 그들의 이중성 때문에 모호하고 난해하다. 너무 커서, 거대한 산을 바라보듯 어떤 이는 동(東)산이라 하고 어떤 이는 서(西)산이라고 부른다. 모두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동서남북 다르고 춘하추동이 다르다. 계곡마다 피는 꽃이 다르고 방면마다 사는 사람도 다르다. 이러한 중국을 입체적으로 탐색하려다가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인내심과 지적 상상력, 지적 탐구력을 모두 소진해야 했다.”(에필로그에서) 한중 간 힘의 비대칭성이 확대됨에 따라 자강론적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중국의 전략전술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고 현재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중국의 실상과 미래전망을 꿰뚫어보고 대응전략을 짜는 시도를 하지 않으면 대중국 전략이 편향되거나 이념의 굴레에 갇히게 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집필 배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이 우리 국민에게 중국의 본질, 실체, 숨은 전략, 중화민족주의와 숨겨진 복속주의 그리고 중국인의 DNA를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를 제공했으면 좋겠다. 중국을 매의 눈을 뜨고 바라보며 우리의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깨우침이 모두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이 함께 출간되는 《극중지계 2 - 경제 편》과 함께 많은 논쟁을 일으키기를 기대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큼 난해한 것이고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는 한중 관계에 대한 구석구석을 들춰내며 활발하게 논쟁해야 한다. 성역이 있어서도 안 되고 중국식으로 은밀하게 덮고 넘어갈 문제도 아니다.”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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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미국 그리고 한반도: 패권의 딜레마. 2
- 저자 : 안인해
- 출판사 : 파니쥬북스
저자소개 저자 : 안인해 경기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마쳤다.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과 일본 게이오대학 등에서 연구하고,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56대)을 역임했다.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과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아 활동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을 지내고 남북방송통신교류추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국방연구원 이사와 국방부 자체평가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외교안보 분야에 자문을 해왔다. 저서로는 〈탈냉전기 중·북한관계 변화 연구〉, 〈동북아질서 재편과 중·북한관계〉, 〈중국과 미국:패권의 딜레마〉(역), 〈중국 미국 그리고 한반도:패권의 딜레마 II〉 (2021), 등이 있다. 논문으로 “중국권력엘리트의 정책대립과 대외개방:하이난성 양푸경제특구를 중심으로”, “북한최고지도층의 정책성향과 정책결정”, “중국위협론과 중·일관계”, “North Korea in 2002:A Survival Game”“中美關係和朝核問題”, “修昔底德陷穽 vs. 金德伯格陷穽”(2019), “Sino-American Conflict during the Trump Administration”(2020) 외 多數 추천사 해리 하딩(Harry Harding)(前 조지워싱턴대 국제관계 엘리어트 스쿨 학장) 미국에서 발간한 나의 책(A Fragile Relationship: the United States and China: 1972)을 ‘중국과 미국: 패권의 딜레마’라는 훌륭한 한국 번역서로 발간해서 널리 알린 GWU 동문으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저자는 한국에서 중국과 북한 연구를 하고 있는 대표적 학자이다. 이 책은 4국가 - 한국, 북한, 중국, 미국-에 대한 역사적 분석으로 한중수교 이후 김영삼 정부로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30년을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 여섯 가지 시나리오로 정리해서 미국의 제한적 공격에 따른 핵능력 제거로부터 북한을 핵국가로 받아들이는 현실적 인식에 이르기까지를 전망하고 있다. 외국어로도 번역되어 더 많은 독자들이 읽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책으로 추천하고자 한다. 닫기 출판사 서평 프롤로그 1992년 8월24일 한국과 중국은 국교정상화를 맺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9월1일부터 6일까지 나는 북한 방문길에 올랐다. 민간인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4월에 개통된 2차선 고속도로로 개성에서 평양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갔다. 1박2일간 금강산 관광을 비롯해서 평양에서 ‘김정숙탁아소’, ‘평양산원’, ‘만수대 예술극장’ 등 명소들을 둘러봤다. 서울로 돌아오기로 한 마지막 날 6일에는 김일성 주석과 주석궁에서 오찬을 했다. 중국과 북한 연구자로서 1992년에 일어난 나의 특별한 경험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김일성 주석에 대한 나의 인상을 기록으로 남겼다가 책 Prologue에 담았다. 거의 6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아직 한번도 발표하거나 출판한 적이 없고 다른 장의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아서 따로 쓰게 되었다. 우리 일행이 평양을 떠난 다음 날 로동신문 전면에 걸쳐 보도됐다는 전언이고 보면 당시 북한에서 상당히 화제를 모았던 셈이다. 미국에서 중국연구로 박사논문을 마쳤는데, 조지워싱턴대학교 Harold Hinton 교수의 지도로 제목이 ‘중국 엘리트정치: 경제개혁과 중·일경제관계 1978∼1989’(Elite Politics in China: Its Relationship to Economic Reform and Sino-Japanese Economic Relations during 1978-1989),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미국에서 인정받은 최초의 중·일관계 학위논문으로 평가받았다. 중국의 경제건설에서 외자투자유치는 절대적 관건인데 일본에서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중국 최고 지도자들의 성향분석을 통한 정책경쟁을 하이난성 양푸경제특구를 비롯한 3가지 사례연구로 분석하고 완성했다. 8월 초 oral defense를 마치고 별 수정 없이 그대로 통과해서 바로 제본을 마치고 귀국했다. 동북아시아 국제정치에 관심을 갖고 미국에서 중·일 간의 경제협력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도 나는 향후 한반도는 중·미 간의 패권경쟁에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중국은 일본의 자본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배후에 미국이 있으니 중·일관계에 비중을 둔다는 시각을 보였다. 장래 중국의 상대는 미국이라는 인식은 확고해 보였다. 중국 건국 후 100년이 지나면 미국을 넘어설 수 있다는 ‘중국몽’은 일찍이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1991년 9월부터 민족통일연구원(현 통일연구원)에서 북한연구실과 기획조정실 근무로 6년 가까이 보내고 있을 때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위해서 국제대학원 설립을 추진했다. 1997년 3월 임용을 위해서 마침 고려대와 이화여대에서 중국 분야를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전공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있었고 나는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가 되었다. 2004년 첫 번째 연구년을 맞아 북경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객좌교수로서 중·미관계와 북한핵문제(中美關係和朝核問題)에 대한 강의를 할 수 있었다. 중국연구는 미국에서 첫 학기부터 시작했으니 어언 40년 가까이 되어 온다. 한국에 귀국한 바로 이듬해 1992년 Harry Harding 교수는 저명한 저서 A Fragile Relationship: the United States and China: 1972-1992 를 미국에서 출간했다. 이 책을 번역해서 한국에 소개하기로 마음먹고 〈중국과 미국: 패권적 딜레마〉로 출판했다. 1992년 이후 사건 전개에 대해서 나의 책을 집필하기로 한 나의 결심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되었다. 2012년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아 나는 한국국제정치학회 죄장으로서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협력: 기회와 도전” 주제로 기념학술회의를 주관했다. 2017년 한·중 국교정상화 25주년에 이 책을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반영해서 2020년 2월에 출간했다. 이후 코로나19 팬더믹과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포함해서 올해 8월에 ‘중국과 미국 그리고 한반도: 패권의 딜레마 II’로 출판되었다. 1990년대 초 소련, 중국을 통해서 평양의 문을 두드리겠다는 한국의 북방정책이 한·중수교로 정점을 찍고 있었다. 미지의 중공(중국공산당)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고 한반도의 북측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처음 북한을 방문한 기간 중 느낀 소회를 회상하며 남측의 상황과 비교해서 기술해 보았다. 김일성 주석과의 오찬 만남을 통해서 느낀 감성으로 김정일-김정은 시대를 이어오는 북녘 하늘 하에서의 상황을 유추해본다.(서장) 한반도에서 남북한 간에 이뤄진 ‘7·4공동성명’(1972)은 중·미 데탕트를 통한 해빙기를 맞은 바로 그해 남북대화가 이어진 결과다. 또한 소련의 몰락으로 탈냉전기가 도래하는 불안정한 시점에 ‘남북기본합의서’(1991)에 합의할 수 있었다. 냉전기에 남북접촉이 이뤄졌던 시기를 바탕으로 중·미관계가 남북한 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틀로서 구조적 역학관계를 살펴본다.(1장) 김영삼 정부에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기회가 있었지만 상대수반의 변고(김일성 서거)로 인해서 남북관계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남측과 북측에서 각자의 합리성을 내세우는 두 개의 통일방안-연합제와 연방제-을 비교해 본다.(2장) 탈냉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로 일컬으며 적극적인 대중국 화해를 모색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남측의 햇볕정첵에 따라 비로소 남북한 간에 첫 번째 정상회담을 통해 ‘6·15공동선언’(2000)이 이뤄졌다.(3장)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한반도 문제에 ‘이해상관자’로서의 중국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어 ‘10·4선언’(2007)에 합의할 수 있었다.(4장) 남북공동성명에 서명한 4번의 경우(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선언)는 모두 중·미간에 상대적으로 우호적 분위기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면 취임초기 부시 대통령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인식하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명명했다. 미국이 9.11사건을 겪는 과정에서 반테러 캠페인 참가 여부에 따라 적과 친구(foe or friend)를 가르게 된다. 남한은 반미정서에 휩싸이면서, 아무리 햇볕정책의 계승자로서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도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기가 있었다. 미국 부시 행정부에서의 중·미관계와 남북한 간의 구조적 역학관계는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에서 감내해야 하는 부정적 영향을 목격할 수 있는 사례연구다.(4장) 북한핵문제로 인해서 남북대화는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자임하면서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에 ‘9·19공동성명’(2005)과 ‘2.13합의’(2007)에 도달했지만 핵보유국이 되고자 하는 북한의 강력한 의지를 꺾을 수 없다.(5장) 한국에서 정권교체에 따라 보수성향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북한에 대한 소위 종북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서 더욱 대담한 대북정책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비전 3000’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6장)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호소한 박근혜 정부(7장)에서 남북대화는 커녕 경색 일변도로 치닫고 있었다. 남북한 간에 장관급회담 한번 열어보지 못한 채 북한은 핵능력 고도화에 집중하여 ‘핵무력 완성’의 길을 걷게 된다. 진보성향의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통해서 남북대화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마련된 남북한 선수 공동참가를 절호의 기회로 삼아 3차례 남북정상 간 만남이 이뤄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초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6.12)으로 세기의 담판을 벌였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판문점선언(4.27)과 평양공동선언(9.19)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2019년 기대를 모았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2.28)을 통해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의구심을 걷어낼 수 있을지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회담은 결렬되고 ‘신한반도체제’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8장) 한반도 판(plate)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구과 미국 그리고 북한과 남한의 상호 현안을 중심으로 양자관계를 살펴본다.(9장)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국들 간의 대립은 를 둘러싼 주요국들 간의 대립은 그 어느 시기보다도 위협적인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향후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 변화를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 북·미, 중·미, 남북한 간에 일어날 수 있는 북한핵 해결방안으로 6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향후 한반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도록 전망해 본다.(10장) 중국의 부상으로 상호 협력하면서도 견제에 따른 동북아 갈등과 협력요인을 분석해 본다.(11장) 中 ‘일대일로’와 美‘인도·태평양전략’이 격돌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양국의 디커플링(decoupling)에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 올해 5월 워싱턴에서 첫 대면으로 바이든-문재인 정상회담이 이뤄져서 철통같은 한·미관계를 다짐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과 미국이 벌이는 패권경쟁의 향방은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합리적 판단과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12장) 이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한국국제정치학회를 비롯해서 여러 학술회의를 통해 유용한 토론을 해 주신 선배, 동료, 전문가들 덕분에 책 내용을 수정, 개선할 수 있었다. 그동안 기고한 신문칼럼도 인용했다.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이 읽기 쉬워서 책 전체 문체를 이에 맞추고자 했다.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강의에 참석한 석·박사 학생들과 자료수집과 교정에 수고한 조교 학생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태영호 전 주영국북한공사는 회의 참석차 두 차례 만났는데, 지난해 구정기간 동안 책을 모두 독파하고 후기를 보내왔다. 평양에서 중학교 시절 영어를 배운 여운형의 딸 여연구 선생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축하하기 위한 삼지연관현악단의 서울공연을 어머니와 함께 관람했다. 평양을 떠나오신 실향민으로 남편을 여의고 홀로 계신 사연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부모님들은 내가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으셨고 중국과 북한연구를 하는데 많은 영감을 주셨다. 오로지 자손들에게 헌신하며 살아오신 덕분이기에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보내며 가족들의 보살핌에 감사할 따름이다. 코로나19로 인해서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경제적 침체를 겪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도 기꺼이 출판을 맡아 준 주)파니쥬 대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辛丑年 五月 一碧 安仁海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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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중국
- 저자 : 신봉수
- 출판사 : 나무발전소
책소개 중국 공산당 100년 역사는 어떻게 가능했나 일본과 달리 중국과 한국에서‘현대’는 왜 전쟁을 통해 시작되었나? 기독교 문명 VS. 유교문명 중국특색사회주의 대탐구 개혁이 아니라 체제전환이다, 중국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국 공산당 창당 100년을 맞은 7월 1일, 신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톈안먼 광장에 올라 “중화민족이 지배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던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그 어떤 세력이든 우리를 괴롭히면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고 공언했다. 아편전쟁 이후 굴욕의 한 세기를 보낸 중국을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시켰다는 자부의 선언이다.1921년 당원 50명으로 출발한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은 2020년 GDP는 전년대비 2.1% 성장했다. 이런 성적은 로로나 팬데믹으로 세계 모든 국가들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것과 대비되는 것이며,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경쟁에서도 꿋꿋이 버텨낼 정도로 강한 국가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공산주의이론은 단 하나의 문장, 즉 사유재산의 폐지로 요약될 수 있다.” 공산당선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중국 공산당이 반동의 이념이었던 자본주의를 적극 수용한 속내는 무엇일까?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물론 역사유물론의 발전법칙에도 맞지 않는 이런 체제를 중국은 스스로 중국특색사회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중국의 사회주의시장경제는 사회주의라는 이념보다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중국이 선택한 전략이었다. 이런 전략은 덩샤오핑이 내건 하나의 중심, 두 개의 기본점에 잘 축약돼 있다. 경제성장이라는 하나의 중심을 위해 두 개의 기본점인 개혁개방과 4가지 기본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4가지 기본원칙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마오쩌둥사상, 사회주의, 인민민주주의독재, 공산당독재다. 공산당은 중국주식회사의 발전을 통해 인민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중국이 국제사회에 걸 맞는 지위를 찾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대신 중국인민들은 민주주의, 자유, 권리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만약 빈부격차가 해결되지 않은 채 현재와 같은 추세로 지속된다면 계약은 파기될 운명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우려와 불안이 교차하는 중국 공산 100년, 그들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한, 간결하고 명확한 방식으로 현재의 중국을 만들어낸 ‘과정’, 그리고 현재 중국 사회나 경제, 정치, 외교의 특징을 설명해준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라고 할 때에 ‘중국 특색’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와 함께 유럽발 ‘사회주의’가 ‘구국’과 ‘근대화’를 주된 의제로 안고 있는 중국에서 어떤 굴절을 겪어 왔는지를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소개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베이징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 학술원 연구교수,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마오의 사회주의 중국과 대안적 근대성」, 「서양정치사상 중심의 정치발전론에 관한 비판적 고찰: 마오쩌둥 사상과 덩샤오핑 이론」, 「국제규범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사회구성: 주권, 민주주의」, 「과학에서 신화로: 중국공산당의 마르크스주의」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마오쩌뚱-나는 중국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중국은 제국을 꿈꾸는가』, 『정치 혁명』등이 있다. 관련기사:[국제신문]2021.6.29.자: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중국특색사회주의 기원 찾아서 〈상〉 농촌에서 길을 찾다, 노동자 부족했던 시대 … 빈농 주체로 사회주의 혁명 완성. 신봉수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연구위원 추천사 민귀식(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장) 복잡하게 얽힌 중국 근현대사를 마치 슬라이드 화면처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열강의 중국 침탈 모습에서 국제정치를 알 수 있고, 이에 대한 대응에서 중국 내부 발전의 동력을 파악할 수 있다. 동서양의 역사와 철학을 넘나드는 넓은 스펙트럼, 기존 틀을 깬 도발적 질문과 핵심만 설명하는 함축적 구성 덕분에 책 읽기를 중간에 멈출 수 없게 한다. 박노자(오슬로대학 한국학과 교수, 작가) 중국에 대한 환상 못지않게 요즘 일각에서 퍼져나가는 비이성적인 ‘혐중’도 위험천만한 풍조다. 신봉수의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한, 간결하고 명확한 방식으로 현재의 중국을 만들어낸 ‘과정’, 그리고 현재 중국 사회, 경제, 정치, 외교의 특징을 설명해준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신냉전이 본격화 되고, 혐오가 너무나 쉽게 정치의 원동력이 되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차이를 넘어 공존의 길을 찾는 것이다. ‘중국’을 둘러싼 문제들이 매일같이 공론의 장에서 논의되는 오늘과 같은 시절에, 이와 같은 책들은 세인의 필독이 돼야 된다. 책 속으로 (81쪽)아편전쟁 당시 서구 현대국가들의 정치체제는 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점차 변화하는 과정에 있었다. 물론 변화의 추세를 주도한 것은 공화제였다. 당시 서구에서 실천되고 있던 공화제는 일인지배체제의 군주제에 반대하면서도 모든 국민이 참정권을 갖는 완전한 민주주의로 발전하기 이전의 과도기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서구의 공화제는 수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중국의 군주제에 직접적인 도전이 됐다. 군주제를 지탱했던 유교의 정치이념도 낡은 것으로 비판의 대상이 됐다.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군주제를 개혁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공화제의 도전을 이겨내지 못했다. 신해혁명으로 공화제가 도입되기는 했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신해혁명 이후 중국은 국민당, 공산당, 군벌들이 각축을 벌이는 내전 상태에 빠져들었다. (89쪽)공산당을 포함한 중국의 혁명세력들은 태평천국의 난을 농민혁명전쟁으로 평가한다. 태평천국이 양자강 이남 지역을 10여 년 동안 통치했기 때문이다. 특히 토지를 공동으로 경작하고 공동으로 분배한다는 천조전무제도는 중국공산당의 사회주의 토지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평등사상에 기초한 천조전무제도에 따르면, “전답은 함께 경작하고 음식은 함께 먹으며 옷은 함께 입고 돈은 함께 사용하여 균등하지 않은 곳이 없으며,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따뜻하게 입지 못한 사람이 없게 한다.”는 것이었다. (93쪽)중체서용에 대한 이런 열린 평가도 그 안에 내재된 중화사상의 보수성을 숨기기는 어렵다. 중체서용은 명치유신과 달리 중국의 편의에 따라 현대문명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려고 했다. 엄복(嚴復)은 중체서용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중학은 중학의 체용이 있고, 서학은 서학의 체용이 있다. 그것을 분별하면 함께 설 수 있지만, 그것을 합하면 둘 다 망한다.” (104쪽)외세열강의 중국침략과 이에 대응하려는 청조의 노력은 양무운동에서부터 변법운동까지 번번이 좌절됐다. 특히 개혁을 둘러싸고 청조 내부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은 외우와 내환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 틈새를 비집고 외세의 수탈과 이에 대응하는 민족주의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의화단운동은 태평천국의 난으로 싹을 틔운 민족주의를 중국인민들 속으로 확산시켰다. (109쪽)서구의 현대적인 제도들은 개인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만들어졌다.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구는 현대문명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계몽정신에서 출발했던 서구의 제도들이 중국에서는 전통사상의 영향으로 공동체를 구하기 위한 도구로 둔갑했다. 서구의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개혁을 시도했던 양무운동, 변법을 통해 서구의 제도를 도입하여 개혁을 추구했던 변법자강운동, 정치제도의 변화를 통해 군주제를 공화제로 변화시켰던 신해혁명 등은 모두 구국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반면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여 인민주권의 기틀을 확립하려는 현대적인 가치는 구국의 열망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났다. (169쪽)사회주의혁명은 중국의 세계관에 남아있던 천하질서의 잔재를 완전히 쓸어버렸다. 대신 소련의 사회주의세계관이 빈자리를 채웠다.사회주의세계관은 첫째, 모든 사회가 생산양식에 따라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사회주의로 변화 발전한다는 역사유물론을 신봉하며, 둘째, 세계는 국가와 마찬가지로 계급지배가 실현되는 곳이며, 셋째, 세상은 인간해방을 위해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이런 사회주의세계관은 스탈린에 의해 변질됐으며, 중국이 받아들인 사회주의세계관은 스탈린에 의해 변질된 것이었다. (203쪽)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중국으로 날아들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유럽국가 중에 자본주의가 가장 발전하지 못한 국가였다. 러시아의 혁명은 중국도 사회주의혁명이 가능하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거기에다 1919년 소련의 외무장관이었던 카라한은 과거 러시아가 중국과 맺었던 모든 불평등조약을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카라한의 선언으로 소련은 뤼순과 다롄의 점령지에서 철수했다. 제국주의와 결별하는 소련의 모습은 중국의 진보적인 인사들에게 사회주의를 새로운 대안으로 저울질 하게 만들었다. (226쪽)마르크스레닌주의의 중국화도 중국이 전체주의로 전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중국은 소련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스탈린의 전체주의 소련모델과 점차 거리를 두었다. 특히 소련모델에 의지한 중공업발전정책이 도시와 농촌 간의 빈부격차는 물론 관료주의의 심화라는 부작용을 낳으면서 중국의 경각심은 커졌다. 소련과의 갈등심화, 소련모델의 부작용에서 벗어나려는 마오쩌둥의 노력은 대약진운동이라는 완전한 평등주의와 전체 인민을 사회주의 인간으로 개조하려는 문화대혁명으로 나타났다. 정치적 기획에 의한 평등주의와 인간개조는 중국의 전체주의를 훨씬 극단적인 형태로 만들었다. (303쪽)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놓고 벌어진 논쟁과 관계없이 덩샤오핑은 저발전 상태의 사회주의중국을 구하기 위해 사회주의초급단계론을 제시했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생산양식을 차용하여 생산력발전을 도모한 사회주의초급단계론은 역사유물론의 예정설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특히 아시아적 생산양식은 중국의 사회주의혁명이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은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동시에 러시아와도 다른 경로를 밟을 수밖에 없는 근거가 됐다. 사회주의초급단계론은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역사유물론을 중국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07쪽) 덩샤오핑 이후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생산력발전을 위해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에 기초하여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그렇지만 공산당일당독재의 정치체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물론 역사유물론의 발전법칙에도 맞지 않는 이런 체제를 중국은 스스로 중국특색사회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321쪽) 중국의 사회주의시장경제는 시장사회주의와는 다르다. 시장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은 공적으로 소유하되 자원의 배분은 시장에 맡기는 것이다. 반면 중국의 사회주의시장경제는 2007년 물권법이 통과되면서 법적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있다. 사회주의든 시장사회주의이든 사적소유는 비판의 대상이다. 그래서 사적소유를 허용하는 중국의 사회주의시장경제는 무늬만 사회주의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400쪽) 아편전쟁은 흔들리는 유교의 위상을 급격히 추락시켰다. 본고장 중국에서조차 유교를 배격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일본은 유교를 버리고 서구를 좇아 현대화에 나섰다. 조선은 달랐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할 때까지 소중화를 자처하며, 유교를 숭상했다. 조선의 이런 태도는 두 겹의 층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나는 유교의 중화주의 세계관으로부터 받은 영향이며, 다른 하나는 유교문명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409쪽) 유교는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비도덕적인 것으로 멀리했기 때문에 유교의 공리주의는 이기주의로부터 항상 자유로웠다. 서구의 공리주의가 개인주의에서 출발하여 쾌락이나 행복을 추구했다면, 유교의 공리주의는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했다. 그리고 공동체의 이익은 도덕적인 원칙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응분의 보상으로 이해했다. 이기주의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438쪽) 자본주의국가들과 달리 중국은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한 목적은 계급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목적은 이미 쓰레기통에 버려진지 오래 됐다. 그 결과는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국가보다 훨씬 심각한 빈부격차를 낳고 있다. 국가가 이윤추구에 나서면서 재분배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중국이 1990년대 이후 빈부격차가 극심해 진 것도 국가자본주의의 길을 걸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444쪽) 트럼프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이전보다 훨씬 빈번하게 중국이 미국을 대신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 나오고 있다. 특히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당시 미국의 자국우선주의와 달리 중국이 적극적으로 대외지원에 나서면서 패권전이에 대한 관심을 더욱 확산시켰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항상 우려와 불안감을 동반하고 있다. 중국의 사회주의 일당독재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 때문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은 진행형이다. 패권다툼의 결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과거 강대국들이 벌인 패권다툼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멀리는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벌인 전쟁에서부터 가깝게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경험까지 호출되고 있다. 출판사 서평 〈현대와 중국〉은 서구의 가치관, 이런 가치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치제도, 경제제도, 국제관계 등이 중국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추적한다.아편전쟁부터 시진핑 시대까지, 기독교 문명과 유교 문명의 만남을 충돌/굴절/변용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했다. 냉전후 실질적 교류가 없었던 사회주의 현대 중국을 촘촘히 탐색해 나간다. 중국의 현대적 특성을 하나로 정립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외세에 대한 저항과 타협, 군벌의 분열과 통일, 공화정과 왕정복고, 종교화된 한족주의와 내전, 대일통과 대만과 분열, 대약진과 문화대혁명,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등 극적인 대결과 반전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충돌; “표류하는 거대한 배” 신대륙의 발견에 이어 아프리카, 인도로 그 세력범위를 넓힌 현대문명은 마침내 중국에도 발을 디뎠다.유교문명은 유일신을 섬기는 기독교의 현대를 배타적으로 대했다.청은 한족과 오랑캐를 구분한 인종주의에 기초했던 중화사상을 인륜과 천리를 강조하는 문화주의로 탈바꿈시켰다. 문화주의로 옷을 갈아입은 중화주의는 인륜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시하는 현대문명을 “계몽”해야 될 오랑캐문명으로 봤다. 반면 서구가 보기에 중국은 세계정신의 변방에서 아직 이성에 의해 “계몽”되지 못한 정체된 나라에 불과했다. 1부 현대와의 충돌은 시기적으로 아편전쟁 이후부터 청이 멸망하는 시기까지를 4장으로 나누어 다루었다. 1장 기축문명의 만남에서는 현대문명의 가치관이 유교문명의 가치관과 서로 충돌하고 수용된 과정을 담았다. 2장 공화제와 군주제에서는 중국의 정치제도가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를 수용하는 과정을 서술했다. 3장 자본주의와 아시아적 생산양식에서는 자본주의가 유입되면서 중국의 경제체제가 변화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4장 식민주의와 천하체계에서는 서구의 식민주의와 중국의 중화사상이 충돌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굴절; 농촌농민혁명론-대약진운동-문화혁명 2부 굴절된 현대는 신해혁명 이후부터 마오쩌둥이 사망할 때까지의 시기를 3개장으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5장 혁명과 독재에서는 서구의 혁명사상이 유입되면서 중국에서 두 차례의 혁명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발생한 정치체제의 변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6장 자본과 노동에서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발생한 생산양식의 변화과정을 살펴본다. 7장 냉전과 민족주의에서는 냉전체제의 형성과 이에 대응하는 중국의 대외정책을 서술하고 있다. “마오쩌둥이 마르크스주의를 중국적으로 해석한 대표적인 사례는 도시노동자혁명론을 농촌농민혁명론으로 각색한 것이었다.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따라 도시노동자혁명을 강조하기보다 중국이라는 현실을 감안하여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 공격하는 농민혁명론을 주장했다. 특히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중국에서 노동자는 소수인 반면 농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했다. 또한 그는 빈농을 가장 혁명적인 집단으로 여겼다. 제1차 국공합작기간 동안 작성한 글에서 그는 “빈농이 없다면 혁명도 없다. 그들을 부정하면 혁명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들을 공격하는 일은 혁명을 공격하는 것이다.”고 단언했다.“(책_217쪽) 변용; 역사유물론의 중국화-사회주의초급단계론 자본가로부터 노동자를 해방시켜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마르크스의 노력은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다. 프롤레타리아독재국가의 일탈로 마르크스주의는 현실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시장경제의 도입에 앞장섰던 덩샤오핑은 “중국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상관없다.”는 성자성사론(姓資姓社)을 주장하며 개혁개방을 이끌었다. 성자성자론 이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 자본주의가 중국의 사회주의 일당독재를 구하고 있다는 평가는 아이러니지만 현실이 됐다. 3부에서는 중국특색사회주의의 경제, 정치, 외교적 특징을 심도깊게 다룬다. 3부 현대의 변용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한 이후부터 시진핑 시기까지를 3장으로 나누어 다루었다. 8장 중국특색사회주의에서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중국특색사회주의를 비교했다. 이를 통해 중국특색사회주의의 정치제도적인 특징을 살펴보고 있다. 9장 사회주의시장경제에서는 자본주의와 비교하여 사회주의시장경제가 갖는 경제제도적인 특징을 다루고 있다. 10장 대중화에서는 미국의 세계전략과 중국의 세계전략을 비교하고 있다. 마오쩌둥이 사망한 이후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중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주의의 부정이 아니라 재해석을 시도했다. 생산력발전을 전면에 내세운 사회주의초급단계론은 이런 재해석의 산물이었다. 사회주의초급단계론은 역사유물론에 기초한 사회주의발전관을 재해석한 것으로서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도입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이었다. “사회주의초급단계론은 자본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단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이루어졌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않아 저발전 상태에 있는 중국은 사회주의초급단계에 있다. 사회주의초급단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산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생산력발전을 위해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도입해야 하고, 이를 통해 생산력이 발전하면 고급단계의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책_299쪽) 결론; 서구의 현대와 대화를 통해 중심주의 극복 필요 4부 결론은 중심주의와 패권이라는 키워드로 11장에서는 중국의 현대가 갖는 의미와 한계를 정리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공자, 맹자, 순자는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하여 각각 그리스 도시국가와 중국의 춘추전국시절에 활동했던 이들이다. 이들은 서양과 동양에서 기축문명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던 사상가들이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면 서구중심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는다. 반면 공자, 맹자, 순자를 인용하면 구시대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중국중심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리스 도시국가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현대의 사상과 제도는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반면 공자, 맹자, 순자로 대표되는 유교문명은 전통이라는 굴레는 물론 중국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공산당 일당독재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중국중심적인 사유의 근저에는 유교가 있다. 그래서 유교를 탈중국화하는 것은 중심적인 사유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특히 한족과 오랑캐를 구별했던 유교의 중화주의는 사회적 관계의 범위를 인종주의라는 함정에 가두었다. 유교의 탈중국화는 서구의 현대와 대화를 통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물론 대화는 중체서용과 같은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체서용의 민족주의는 공동체의 범위를 중국으로 국한했다. 그 결과는 유교의 결과주의와 서구의 공리주의가 선택적으로 결합되면서 개인을 국가주의의 희생양으로 만들었다.”(책457~458)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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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딜레마
- 저자 : 박민희
- 출판사 : 한겨레출판사
책소개 “2011년 초 ‘재스민 혁명’의 물결이 중동 곳곳을 뒤흔들던 때였다. 그해 3월 6일 ‘모리화(재스민) 시위’가 예고되어 있던 베이징 중심가 왕푸징으로 취재를 나갔다. 온라인에서 집회 장소라고 지목된 맥도널드와 케이에프시 매장 안의 많은 손님들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계속 주변을 살피는 사복경찰들이었다. 거리의 청소부들도 눈에 띄게 깔끔한 차림으로 쓰레기도 없는 도로를 빗자루로 계속 쓸면서 행인들이 모일 수 없게 했다. 공사를 하지 않는데도 거리 한가운데를 공사장 가림막으로 막았다. 살수차들은 물청소를 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거리를 계속 돌아다녔다. 모두가 연극을 하고 있었다. 시위는 없었고 권력의 불안함만 가득했다.” (6쪽) 책 속으로 2013년 한국에 돌아온 이후 중국의 소식을 들여다볼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시진핑 시대 중국에선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시진핑 주석과 공산당 지도부가 스스로 신시대新時代임을 선언하고, 공산당과 시 주석의 권력을 계속 강화했다. 헌법을 고쳐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폐지하고 시진핑 주석에 대한 개인 숭배 운동을 벌였다. 시 주석은 국내에서는 위기감과 함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대한 자신감을 강조했고, 국제적으로는 거침없고 강압적인 외교를 밀고나갔다. 2000년대 이후 중국식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며 힘겹게 자라난 풀뿌리 사회운동, 노동운동, 자발적인 사회변혁 움직임들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첨단기술을 활용한 삼엄한 감시 사회를 만들어냈다. 위구르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홍콩 국가보안법이 강행되는 등 ‘제국’의 주변을 강제로 동화시키려 하고 있다. ‘왜 시진핑 시대 중국은 이 길로 가고 있을까’라는 꽤 오래된 고민에서 이 글은 시작되었다. (7~8쪽) 시진핑 시대 외교의 주요 구호인 ‘인류 운명 공동체’ 그리고 유라시아를 넘어 아프리카에까지 중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일대일로 정책은 새로운 천하체계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것이다. 그 중심은 중국이며 충성하는 국가에는 경제적 이익이, 불충하는 국가에는 보복이 주어지는 21세기 조공 질서다. 공유할 가치는 희미하고 돈의 힘으로만 유지되는 ‘인류 운명 공동체’를 세계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67~68쪽) 미국 역시 신장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의 위구르인들에 대한 탄압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서구와 전 세계에 확산시킨 반이슬람주의와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붙잡은 이슬람 무장 세력 조직원들을 관타나모 수용소에 재판 없이 무기한 수용해 고문했다. 미국은 그렇게 전 세계적으로 반이슬람주의를 확산시켰다. 중국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동조했고, 부시 행정부는 중국 당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신장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 단체인 동투르키스탄독립운동(ETIM)을 테러리스트 그룹으로 지정하는 한편 위구르인 들을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했다. 중국 당국은 자신들이 서구 국가들의 반테러ㆍ급진주의에 대한 대응법을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106~107쪽) 2014년 해바라기운동 이후 민주·자유·진보적 가치에 대한 지향이 더욱 뚜렷해진 대만 사회에서 중국의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고, 중국과의 갈등 고조 속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3각 딜레마’에 대한 대만 사회의 고민은 깊다. 왕즈밍王智明 대만중앙연구원 연구원은 해바라기운동과 우산 혁명으로 대만 사회에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며, “독립을 바라거나 중국을 거부하는 젊은 유권자들이 중국에 우호적인 보수적 유권자들을 압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변화가 대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며 “부정적인 쪽으로 보면 대만해협 에서의 전쟁 가능성이고, 긍정적인 면을 보면 대만 주체성의 진일보한 확립이다. 하지만 낙관적으로 기대한다 해도 모두 미국의 지지에 의존하는 것으로 이 점이 대만을 전쟁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157쪽) 2015년 7월 9일 새벽, 여성 변호사 왕위王宇와 남편, 열다섯 살 아들이 검은 옷의 남성들에게 끌려가 실종된 것은 긴 공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몇 달 만에 중국 전역에서 인권변호사와 인권운동가 300여 명이 공안에 체포되었다. 그들의 ‘죄’는 중국 당국이 불온시하는 이들을 변호하고 사법 정의를 요구한 것이었다. ‘709 대체포’로 불리는 이 사건은 시진핑 시대 중국이 공산당에 비판적인 목소리는 조금도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하고 강력한 불호령이었다. (161쪽)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 무렵까지는 중국 노동 운동의 희망이 확산되었던 시기였다. 파업의 물결이 광둥성과 상하이 등 연해 지역 곳곳을 뒤덮고 노동계약법이 도입되어 임금이 인상되고, 노동 연령층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들의 발언권이 강해졌다. 사람을 기계처럼 부리는 관리 체제와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임금을 인상하라는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2010년 애플 아이폰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첨단 전자제품을 조립 생산하는 중국 폭스콘 공장에서 10대와 20대 초반 노동자 18명이 잇따라 고층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연쇄 자살의 비극을 통해, 이들은 일주일에 6~7일, 하루 12시간 넘게 로봇처럼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며, 모든 일상을 통제당하는 고통을 세상에 폭로했다. 농민공들은 현실의 모순을 명확히 자각하고 더 나은 현실을 꿈꾸며 노동운동에서 희망을 찾았고, 《전태일 평전》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등을 읽으며 ‘취안타이이’(전태일의 중국 발음)가 준 희망의 불씨를 마음에 품었다. 시진핑 정부는 노동자들의 각성과 권리 의식 성장을 사회불 안정 요소로 판단했다. (184~185쪽) 2019년 10월부터 중국 정부는 자국 언론인들이 5년에 한번 기자증을 갱신할 때마다 ‘시진핑 사상’(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 시험을 의무적으로 치르고 통과해야만 갱신할 수 있게 했다. 당과 주석에 충성하는 것이 언론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되었다. (204쪽) 2020년 10월 24일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금융서밋 연단에선 마윈 전 알리바바 회장의 작심한 듯한 21분 연설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와 핀테크(모바일 기반 금융 서비스) 기업 마이그룹?蟻集團(앤트그룹)의 창업자인 그는 중국 지도자들과 최고위 금융 당국자들 앞에서 전자금융 시대의 혁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당국의 규제를 비웃고 질타했다. “중국의 문제는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가 아니다. 중국에는 제대로 된 금융 체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금융 시스템의 부재가 바로 리스크다. 은행들은 아직도 전당포식 사고를 계속하고 있다.” 11월 2일 인민은행과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등 중국 4대 금융 당국이 마윈 전 회장과 마이그룹 경영진을 소환한 뒤, 11월 5일로 잡혀 있던 마이그룹의 홍콩·상하이 증시 동시 상장이 돌연 중단되었다. 단번에 370억 달러(약 40조 원) 이상을 모을 예정이던 역사상 최대의 기업공개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이 결정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내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232~233쪽) 시진핑 주석의 이데올로그인 허이팅何毅亭 중앙당교 부교장은 시 주석의 67번째 생일인 2020년 6월 15일 공산당 이론지인 《학습시보》(學習時報)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시진핑 사상) 은 21세기 마르크스주의”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시진핑 사상은 “세계 사회주의 500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장”이라며 “시진핑 사상의 이론 가치는 세계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시진핑 총서기는 우리나라와 세계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에 대해 중국의 입장과 중국의 지혜 그리고 중국의 가치의 이념ㆍ주장ㆍ방안을 제시했다”고 했다. 절대 권력 아래서 중국이 잃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270쪽) 출판사 서평 중국은 왜 이 길을 가고 있을까 중국의 발전 모델은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현대 중국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이자 중국체제에 관한 친절한 입문서. 중국 전문 기자 박민희가 14년의 취재와 연구를 집약한 《중국 딜레마: 위대함과 위태로움 사이에서, 시진핑 시대 열전》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친중도 혐중도 아닌 눈으로, 현대 중국체제가 직면한 딜레마를 직시한다. 정치국 상무위원 왕후닝, 외교부 대변인 자오리젠, 부총리 류허 같은 공산당 핵심 관리들을 통해 체제를 유지하는 논리를 분석하고, 위구르인 라힐라 다우트, 인권변호사 왕취안장, 기업가 마윈 등을 통해 시민사회와 시장경제가 체제에 영합하고 저항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이 책은 ‘열전’의 형식을 빌려 현대 중국을 입체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2012년 시진핑이 주석에 취임한 이래 중국공산당은 시진핑에 대한 개인 숭배 운동을 벌이고(“학습강국學習?國”), 당헌과 헌법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명시하고 주석 임기 제한을 폐지했다(2017년 19차 당대회). 같은 기간 동안 2000년대 이후로 힘겹게 자라난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위구르와 홍콩에서 동화 정책을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2021년 7월 중국공산당은 창당 100주년을 맞이한다. 2022년에는 20차 당대회를 맞아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결정할 것이다. 왜 시진핑 시대 중국은 이 길을 선택한 것일까? 저자는 2007년 중국 런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중국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시진핑 시대의 개막을 목격했다. 이후 중국 전문 기자로 일하며 중국, 홍콩, 대만, 위구르 문제를 취재하고 연구했다. 이 책 《중국 딜레마: 위대함과 위태로움 사이에서, 시진핑 시대 열전》은 미-중 신냉전의 최전선을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중국을 이해하는 특별한 안내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 체제를 지키는 사람, 저항하는 사람, 영합하는 사람 20인의 인물로 보는 21세기 중국 현대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절대 권력이 동요했던 하루를 꼽는다면 2020년 2월 6일을 떠올릴 것이다. 코로나19로 중국이 혼란과 고통의 터널 한가운데 있던 그날 밤, 봉쇄 상태에 있던 후베이성 우한에서 의사 리원량이 숨졌다. 밤 9시 30분께 리원량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처음 나왔으나 곧 검열로 삭제되었다. 공식 발표는 다음 날 새벽 3시께 나왔다. 여론의 분노를 우려한 당국이 발표 시간을 늦춘 것이다. 리원량은 2019년 12월 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으로 알렸다가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며 공안에 잡혀가 처벌을 받은 뒤, 자신도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숨졌다. “사회에 하나의 목소리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유언과 같은 발언이 한동안 온 중국을 뒤흔들었다.” (32~33쪽) 중국은 왜 이토록 불안에 사로잡혀 있을까? 중국공산당은 왜 이토록 작은 외침도 두려워할까? 시진핑 시대 중국의 행보는 개혁개방 이후 40년 동안 누적된 빈부격차와 부패, 성장모델의 한계로 위기에 봉착한 중국공산당의 정당성을 새롭게 강화하려는 시도다.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은 마오쩌둥 시기에는 외세를 몰아내고 통일을 이루어서 건국한 것(站起來),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시대에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것(富起來)에서 나왔다. 하지만 시진핑 시대 들어 초고속 성장이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워졌고 화려한 성과 뒤에 가려진 빈부·도농·지역 간 격차가 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동시에 체제를 흔들었다. 공산당 지도부는 강해짐(强起?)으로 새 정당성을 만들기로 했다. 이 책의 1부는 시진핑 국가주석을 다룬다. 특히 절대 권력을 만들어낸 동력인 공산당의 위기의식에 초점을 맞춘다. 시진핑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깃발을 들고 마오쩌둥의 유산을 이용하는 동시에, 문화대혁명의 혼란을 두려워하며 아래로부터 저항과 ‘서구식 민주주의’의 확산을 철저히 억압하는 상황을 살펴본다. 2부에서는 시진핑 체제를 설계하고 운영해온 관리들을 통해, 공산당의 통치 방식과 지배 엘리트의 세계관을 살핀다. 3부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희생되는 변경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진핑 시대 중국은 외세의 침략으로 빼앗긴 홍콩과 대만을 회복해 중화제국의 부활이라는 업적을 완수하겠다는 야망을 추구한다. 4부는 중국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민간 활동가들의 이야기다. 2000년대 들어 인권변호사, 노동운동가, 시민기자, 여성운동가 들이 자유와 법치를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진핑 체제는 이런 움직임을 조금의 양보도 없이 철저히 탄압했다. 5부는 중국공산당에 영합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는 기업가들을 통해, 중국이 감시사회와 국가자본주의를 실현하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국가를 감시할 시민사회가 미약한 중국에서 4차 산업혁명은 ‘법가적 빅브라더 사회’의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마지막 글에서는 시진핑 체제의 정치학적 의미를 되짚는다. 제국의 꿈과 민주의 불씨 사이에서 빛과 어둠, 중국의 미래를 보다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Make China Great Again)을 외치고, 트럼프는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쳤던 것은, 두 제국의 포퓰리즘이 충돌하는 기묘한 광경이었다. 중국 지도자들은 “탐관오리를 타격하라”고 했고, 트럼프는 “의회를 공격하라”고 했다.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마오쩌둥의 구호가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다. 문화대혁명을 연상시키는 포퓰리즘의 세계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더는 사회가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수렁에서 헤어 나올 길이 보이지 않는다.” (282쪽) 딜레마(dilemma)는 두 가지 중 무엇을 선택해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 책은 시진핑이 주석에 집권한 2012년 이후를 ‘시진핑 시대’라 이름 붙이고, 중국이 제국의 꿈과 민주주의라는 갈림길에서 내린 선택과 결과를 상세히 살핀다. 저자가 직접 중국을 돌아다니며 취재했던 현장의 목소리를 되짚어보고, 지금 벌어지는 일들의 역사적 맥락과 기원을 되짚는다. 중국뿐만 아니라 위구르, 홍콩, 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의 현재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는다. ‘혐중’은 중국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막고, 중국 내부의 다양성에 대한 관심을 차단하는 위험한 현상이다. 혐중을 넘어 중국과 협력은 넓히되, 비판할 부분은 비판하고 연대할 부분은 연대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어떤 나라도 거대하고 복잡한 중국을 외부의 압력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중국 내부에서 스스로 개선하고 변화해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수천 년 동안 중국과 어떻게 공존할까를 고민해온 이웃으로서 한국의 시민들은 중국의 현실을 진지하게 보고, 협력하되 할 말을 하고, 우리의 원칙을 지키면서 공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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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1921~2021)
- 저자 : 이희옥 (엮음) , 백승욱 (엮음)
- 출판사 : 책과함께
책소개 혁명과 건설, 발전의 시대를 지나 ‘신시대’로 다양한 관점과 맥락으로 들여다본 중국공산당 100년사 중국공산당 창당 100년을 맞아, 한국의 중국 연구자들이 이론ㆍ노선, 경제, 조직, 외교, 노동운동, 젠더 등 다방면으로 100년사를 살펴본다. 시기를 혁명, 건설, 발전 그리고 신시대로 구분해 접근한 것은 중국공산당 100년의 역사적 맥락이 보편과 특수, 혁명과 건설, 지양과 계승의 길항 관계 속에서 역사적 실험을 해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열린 토론과 더 풍부한 논의를 위해 필자들 사이의 상충되거나 논쟁이 될 있는 입장들을 통일하지 않고 살렸다. 중국공산당은 당과 홍군이 국가와 군대를 만들고 운영한 특이한 경험을 가지고 탈냉전 속에서 소련과 동유럽이 몰락했음에도 살아남아 집권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향후 중국의 지속적인 부상과 미국 패권의 상대적 하락에 따라 국제질서의 판도가 흔들릴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역사는 비단 일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세계와 동아시아 지역 그리고 한반도에도 각기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즉,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국가의 의미, 세계 자본주의에 깊게 포섭된 중국의 미래, 중국 사회주의체제의 원심력과 구심력, 한반도 분단체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 등 다양한 토론의 주제가 공론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이희옥 (엮음) 경제/경영작가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성균중국연구소 소장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의 정치변동과 동북아 국제관계이며, 주요 논저로 《중국의 새로운 사회주의 탐색》, 《중국의 국가 대전략 연구》, 《중국의 새로운 민주주의 탐색》 등이 있다. 저자 : 백승욱 (엮음) 대학/대학원 교수 사회학자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 사회변동, 세계체계의 역사변동, 마르크스주의 연구이며, 주요 논저로 《중국의 노동자와 노동정책》,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 《생각하는 마르크스》, 《자본주의 역사강의》 등이 있다. 책 속으로 프롤로그 중국공산당 100년, 이해의 확장을 위해, 15쪽 이 책에서 혁명, 건설, 발전 그리고 신시대로 구분해 접근한 것은 공산당 창당 이후 100년사의 역사적 맥락이 보편과 특수, 혁명과 건설, 지양과 계승의 길항 관계 속에서 역사적 실험을 해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100년 전체에 대해 ‘중국특색’을 강조하고, 국가주의와 성장주의를 결합한 부국강병의 역사로 환원하며, 이를 새로운 100년의 역사적 출발로 삼는 시진핑 신시대의 역사 다시 쓰기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제1장 중국공산당 100년: 혁명에서 신시대까지, 57쪽 2021년 신년사에서 시진핑은 중국이 전면적인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고 했다. 2012년 시작되었다고 선언한 신시대가 창당 백 년이라는 첫 번째 백 년에서 건국 백 년이라는 두 번째 백 년으로의 전환점에서 초강대국으로의 새로운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중국은 권력의 집중화와 당-국가체제의 강화를 통한 새로운 제도를 모색하고 있다. 제2장 이론적 논쟁과 노선 투쟁, 89쪽 1990년대 후반 중국의 신좌파 대 자유주의 논쟁이 일종의 좌파 지식인 대 우파 지식인의 논쟁의 구도였다면, 2016년에 벌어진 중국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에 관한 논쟁은 좌파 및 진보 지식인 내부의 논쟁이라는 점이 그 특징이며, 중국 대륙 내부의 지식인들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제3장 사회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97~98쪽 현재 중국을 둘러싼 대외경제 여건은 과거 어느 때보다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 2016년 중국 위안화에 대한 국제 금융자본의 공매도 공격, 2018년부터 시작된 미국과의 무역 분쟁, 2019년의 코로나 책임론까지 국제 여론은 급격하게 중국공산당에 호의적이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러한 대외경제 환경의 변화는 공산당의 향후 경제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제4장 사회동원과 조직화, 154~155쪽 격자에 건설된 당 조직은 중국 사회의 요구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는가? 중국의 사회단체는 과연 중국 사회가 정말 원하는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 사회가 원하는 사회 서비스는 과연 중국공산당에 포섭된 사회단체가 제공하는 사회 서비스로 한정되는 것일까? 중국 사회는 중국공산당의 사회관리의 틀 속에서 자신의 요구와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가? 제5장 대외인식과 외교정책 노선, 164쪽 중국의 부상과 강대국화 추구는 역내·외 국제질서의 재편을 예고하는 것으로, 그 변화는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뿐만 아니라 글로벌 거버넌스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중국 대외관계의 역사에서 중국의 대외인식과 외교정책의 주요한 변화와 계속성을 파악하는 것은 현재 부상하는 중국의 대외인식과 외교정책의 변화가 가지는 함의와 그것이 중국의 대외관계, 더 나아가 국제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제6장 노동자 조직의 역사와 변화, 222쪽 신계급사회에 균열을 내는 목소리는 자유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주의적인 문제제기에서 왔다. 지난 100년간 공산당이 혁명 정당에서 민족정당으로 변신하고 소수 특권층의 이익이 공고화되면서, 사회주의 원칙은 다시 노동계급의 권리를 주장하게 하고 중국 사회의 고장 난 부분을 들추어내는 날카로운 메스가 되었다. 제7장 문예정책과 근현대문학, 250쪽 문학에서도 비판적 사유는 존재한다. 선전선동 문학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복잡한 시대적 과제를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자기 자신을 복잡하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던 루쉰이 대표적이고, 사회주의적 개조에 침묵하고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추구했던 선충원, 사회주의적 개조에 동조했지만 새로운 창작성과를 내지 않았던 딩링 등이 있었다. 개혁개방 시기 가오싱젠과 모옌은 같은 노벨상 수상 작가지만 전자는 수상 이전 중국을 떠났고 후자는 남았다. 후자는 민족의 영웅 대접을 받지만 전자에 대한 연구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중국이다. 제8장 혁명과 젠더, 261쪽 20세기 중국의 여성해방은 5·4 시기에 ‘도시’에서 시작되어 항전 시기에 ‘농촌’으로 근거지를 옮겨 진행되었고 개혁개방 이후에는 ‘농촌’에서 시작되어 ‘도시’ 주도적인 개혁과정을 겪었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여성은 생산노동과 인구재생산의 주체로 호명되었으며 개혁개방 이후에는 도농 분리 호구제가 완화됨에 따라 장소 ‘이동’이 가능해져 계층분화와 함께 젠더 권력관계에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에필로그 ‘신시대’ 중국의 역사 다시 쓰기, 298쪽 중국의 역사 재해석은 지금도 변화 중인데, 한편에서는 부국강병의 연속성이 강조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특색’의 긴 뿌리가 강조된다. 한편에서 중국의 예외성이 강조되는 특수주의가 두드러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 예외주의가 ‘서구적’ 보편주의의 틀을 재전유하는 우회로로서 작동하게 됨이 확인된다. 여기서 보편주의의 틀을 벗어나는 특수주의란 없음이 다시 확인된다. 닫기 출판사 서평 혁명과 건설, 발전의 시대를 지나 ‘신시대’로 다양한 관점과 맥락으로 들여다본 중국공산당 100년사 2021년, 중국공산당은 창당 100년을 맞이했다. 중국공산당은 당과 홍군이 국가와 군대를 만들고 운영한 특이한 경험을 가지고 탈냉전 속에서 소련과 동유럽이 몰락했음에도 살아남아 집권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향후 중국의 지속적인 부상과 미국 패권의 상대적 하락에 따라 국제질서의 판도가 흔들릴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공산당의 성취를 평가하면서 축제와 선전의 열기가 고조되었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사회주의 정체성의 정치’를 강조하는 한편 ‘중국특색’이라는 교조를 주입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역사는 비단 일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세계와 동아시아 지역 그리고 한반도에도 각기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즉,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국가의 의미, 세계 자본주의에 깊게 포섭된 중국의 미래, 중국 사회주의체제의 원심력과 구심력, 한반도 분단체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 등 다양한 토론의 주제가 공론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 책은 중국공산당 100년의 역사를 비판적이고 주체적 시각에서 검토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각 분야에서 관련 연구 성과를 쌓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온 한국의 중국 연구자들이 참여했고, 여러 차례의 공동논의 속에서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같은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을 바라보는 국내 연구자들의 다양한 관점과 견해가 있고, 필자들 사이의 상충되거나 논쟁이 있는 될 수 있는 입장들을 하나의 관점으로 무리하게 통일시키려 하지 않았다. 중국을 보는 서로 다른 시각이 열린 토론을 가능하게 하고, 더 풍부한 논의를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단일정당의 100년 통치,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1921년 7월, 상하이에서 당원 50여 명, 대표 13명으로 출발한 중국공산당은 현재 9000만 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정당이 되었고, 2021년 창당 100년이라는 역사적 계기를 맞았다. 한 정당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은 흔치 않을 뿐 아니라, 단일정당이 혁명당에서 통치당으로, 다시 집정당으로 변모하면서 100년 동안 지배한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중국공산당에 대한 규범적 평가와는 별개로 내구력의 원천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평가가 있었고, 심지어 기업과 사회조직 관리 차원에서도 탐구의 대상이었다. 또한 경제발전이 중산계급을 만들고 이들이 정치적 민주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근대화 이론, 비교정치의 오랜 명제에도 충격을 주었다. 사실 미국이 중국과 체제경쟁을 본격화한 것도 중국이 ‘성공의 역설’에 쉽게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은 공산당 창당 이후 혁명 30년, 건설 30년, 그리고 개혁개방을 통한 발전 30년을 지나 ‘신시대’에 이르는 100년의 역정을 거쳤다. 그러나 ‘신시대’는 ‘구시대’를 전복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100년의 역사적 유산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사회주의에 기초한 재집권과 ‘강제로 열린 근대’를 초극하기 위한 기획이라는 점에서 ‘열린 100년을 향한 분투’라고 부를 수 있다. 이를 추진할 수 있었던 소명의식과 추진동력은 부상한 중국이 가져다준 노선, 이론, 제도, 문화에 대한 ‘네 가지 자신감’에 근거했다. 그러나 이러한 신시대 기획에 ‘백년대변국’으로 불리는 대전환기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과도기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정치공학이 내장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미·중 패권경쟁과 중국의 미래 트럼프 정부와 바이든 정부 모두 ‘중국’을 ‘중국공산당’과 분리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시진핑을 국가주석이 아닌 총서기로 부르는 등 냉전기 체제경쟁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실제로 GDP 기준으로 중국이 미국의 국력을 3분의 2까지 추격했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 회복탄력성을 발휘하면서 그 격차를 더욱 좁혔으며, 두 개의 디지털 플랫폼 경쟁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따라서 미국은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중국의 기세를 ‘지금 여기서’ 막지 못한다면 자신의 패권을 더는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이렇게 보면, 중국공산당 100년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미국의 꿈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꿈이 충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혁명, 건설, 발전 그리고 신시대로 구분해 접근한 것은 공산당 창당 이후 100년사의 역사적 맥락이 보편과 특수, 혁명과 건설, 지양과 계승의 길항 관계 속에서 역사적 실험을 해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100년 전체에 대해 ‘중국특색’을 강조하고, 국가주의와 성장주의를 결합한 부국강병의 역사로 환원하며, 이를 새로운 100년의 역사적 출발로 삼는 시진핑 신시대의 역사 다시 쓰기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해답의 범용화 시대에 정책 대안과 답안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있는 상태와 있어야 할 상태의 차이’를 의미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이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지금 여기서’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공산당의 성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중국의 미래는 세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줄 것인가,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국에서 중국연구를 어떻게 기획하고 조직할 것인가 등과 같은 새로운 질문이 공론장에서 다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책의 구성 프롤로그 〈중국공산당 100년: 이해의 확장을 위해〉 신시대 두 개의 100년 프로젝트를 과거 100년을 결산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100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기획으로 보았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혁명, 건설, 발전, 신시대로 구분하여 지속과 변화를 검토했고, 신시대의 사회주의로의 복귀가 지닌 세계사적 함의를 판독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필자들의 글을 간략하게 추려 소개하고 한국에서 비판적 중국연구의 가능성을 함께 제시했다. 제1장 〈중국공산당 100년: 혁명에서 신시대까지〉 지난 100년의 정치사를 정리하면서 권력의 집권과 분권, 권력 승계제도의 규범화, 당-정관계의 변화를 중심으로 중요한 변화를 관찰한다. 제2장 〈이론적 논쟁과 노선 투쟁〉 주요 시기별로 당내뿐 아니라 당 외부를 포함해 전개된 주요한 이론적 논쟁들과 노선 투쟁의 쟁점을 다룬다. 창당 시기의 논쟁은 ‘문제와 주의’ 논쟁에서 시작해 중국 토착적인 혁명노선 논쟁으로 이어졌으며, 사회주의 건설기에는 소련 사회주의 건설 노선을 둘러싼 노선 논쟁에서 시작해 백가쟁명으로부터 반우파투쟁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문화대혁명 시기 제기된 ‘자본주의하에서 사회주의 길을 걷는 세력’이라는 쟁점이 부각되었다. 개혁개방기에는 진리표준 논쟁과 개혁의 성격이 자본주의적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촉발되었으며, 이후 논쟁은 당 외부로 좀 더 확대되었다가 ‘신시대’ 들어 당 외부의 논쟁은 크게 억제되는 경향을 보인다. 제3장 〈사회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지난 100년의 중국 경제의 역사에서 중국공산당의 경제방침이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 검토한다. 공산주의 이상사회 건설의 계획을 점차 포기하고 시장사회의 요소를 전면적으로 도입해가는 과정으로 한 세기를 검토하며, 이 과정에서 확인되는 이념, 제도, 세계 경제 조건들의 불균형이 초래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제4장 〈사회동원과 조직화〉 ‘동원, 개조, 관리’의 관점에서 사회 영역에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지를 검토하며, ‘공건, 공치, 공향’의 기준에서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혁명과 내전 시기 동원과 통제에 초점을 맞추었던 사회조직화는 사회주의 건설기에 도시의 단위체제와 농촌의 인민공사체제를 통해서 동원, 개조, 관리를 좀 더 통합했고, 개혁개방 시기에 앞선 체제들이 해체되면서 ‘사구’가 사회조직화의 틀로 중시되었고, ‘격자로 세분화’하는 주민관리와 ‘정부의 서비스 구매’ 같은 방식이 사회 거버넌스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제5장 〈대외인식과 외교정책 노선〉 시기별 중요한 세계질서 구도와 그에 대한 중국의 외교정책 노선의 대응을 정리해 보여준다. 중국 외교정책의 지속과 변화를 동시에 포착하면서 혁명, 건설, 개혁개방, 세계금융위기마다 어떻게 변용하고 있는가를 밝히고 비서구 사회주의국가의 부상이 기존의 국제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했다. 그러나 중국은 기존의 고립주의 외교를 버리고 강대국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미국과의 전략경쟁에서 지속적인 게임체인저를 찾아, 다극화를 목표로 하는 신형 국제질서를 찾고자 할 것이다. 제6장 〈노동자 조직의 역사와 변화〉 중국공산당과 노동자계급의 관계가 시기별로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검토한다. 혁명기 상하이 등지에서 공회를 건립하며 파업을 주도한 운동을 배경으로 등장한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 건설기에 당과 공회 사이의 관계 설정에 대한 긴장의 시기를 거치며 노동자계급이 당국체제의 목표에 종속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시기나 톈안먼 사건 전후에 기존 공회의 제약을 벗어나는 새로운 노동운동이 분출한 데서 보듯, 노동자계급을 당의 통제하에 가두는 것이 수월하지는 않았고 21세기 들어서도 파업의 고조, 당 통제하의 공회의 변신 시도, 당 외곽의 NGO 조직의 등장 등이 병행하면서 노동문제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제7장 〈문예정책과 근현대문학〉 지식인과 당의 이념적 통제 사이의 관계를 현대문학 논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1942년 〈옌안 문예 연설〉, 1949년 전국 문학예술 공직자 대표대회에서 당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는 문학의 위상을 보여주었으며, 개혁개방은 이런 통제에서 벗어나는 시도로서 ‘사상해방’의 경험을 보여주지만, 톈안먼 사건 이후 다시 통제가 강화된다. 제8장 〈혁명과 젠더〉 지난 100년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첫째, 생산ㆍ재생산ㆍ이동이라는 기준점을 제시하고, 둘째, 태평천국의 난과 캉유웨이 등 전통에서 변신을 시도한 중국 고유의 여성해방 모델에 대한 함의를 부각시키며, 셋째로, 북한의 경험과 중국의 경험을 대조해보고자 한다. 이를 거치며 중국의 경험이 보여주는 복잡성을 드러내고 서구 여성해방의 관점만으로 중국의 지난 한 세기를 판단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에필로그 〈‘신시대’ 중국의 역사 다시 쓰기〉 지난 100년간 공산당의 역사를 여러 측면에서 검토한 다음 중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 다시 쓰기라는 문제를 검토해본다. 혁명사의 정통 견해인 ‘자본주의 맹아론’과 ‘관료자본주의론’에 대한 일국적·경제주의적 재해석의 시도가 이미 20여 년 이상 지속되었음을 살펴보면서, ‘신시대’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지난 한 세기를 ‘중화민족 굴기의 투쟁사’로 재서술하고자 하는 바람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왔음을 보여주고자 했고, 역사에 대한 재해석은 시공간을 가두기보다 확장하는 노력을 동반해야 의미가 있을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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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협력의 동반자
- 저자 : 신봉섭
- 출판사 : 21세기북스
책소개 북한과 중국은 영원한 혈맹? 북중관계, 그 갈등과 협력의 역사를 해석하는 새로운 관전법! 올해는 북한과 중국이 ‘조ㆍ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한 지 꼭 60주년 되는 해이다. 그동안 북중관계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대부분 미시적인 분석에 치우쳐 통시적인 맥락을 짚어내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미중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반도 안보지도의 미래 향배를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북중관계에 대한 냉철한 직시와 객관적인 접근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북중관계의 전개와 정책 결정 과정을 ‘전략적 선택’의 관점에서 접근한 『갈등과 협력의 동반자: 북한과 중국의 전략적 공생』이 21세기북스에서 출간되었다. 공직 생활 33년간 중국 대륙과 홍콩, 대만의 재외공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동북아 안보문제뿐 아니라 특히 북중관계의 상호 불신과 갈등, 협력과 거부, 관여와 이탈이라는 특수한 관계를 가까이에서 통찰할 수 있었던 저자가 만년에 취득한 박사 논문을 기본으로 하여 현장 관찰에서 얻은 경험을 함께 반영한 결과물로 내놓은 책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부터 현재까지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 전개되어온 정책 결정과 대응이 국제체제적으로 어떤 배경에서 비롯되고, 양자관계는 상호 어떤 긴장과 갈등 과정을 반복해왔는지를 전략적 선택과 공생관계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통시적인 북중관계의 역사를 담고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가 직접 도식화한 도표만 해도 32개에 이른다. 국문, 영문, 중문, 일문으로 된 논문과 단행본, 언론자료 등 수백 편에 이르는 참고문헌은 이 책에 객관성과 정확성을 더해주고, 동시에 독창성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신봉섭 중국 전문가로서 평생 중국과 깊은 연을 쌓았다. 중국 대륙과 홍콩, 대만의 재외공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대중국 외교안보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중국 현장을 누비면서 대북한 통일외교에 참여하는 한편, 남북관계 진전과 위기의 반복에 따른 동북아 안보문제를 깊이 관찰했다. 특히, 북중관계의 상호 불신과 갈등, 협력과 거부, 관여와 이탈이라는 특수한 관계를 가까이에서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1960년 강원도 홍천 출생. 서울대학교 중문학과 졸업. 대만정치대학 동아연구소 석사.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박사. 주홍콩 한국총영사관 영사 및 주중국 한국대사관 2서, 1서, 공사참사관, 주중국 한국대사관 공사(정무), 주선양 한국총영사관 총영사 역임. 현재 (사)한반도개발협력연구원 운영위원, 숭실대학교 한반도통일전략연구소 국제전문위원, 한림대학교 글로벌협력대학원 객원교수. 2003년 보국훈장 삼일장, 2014년 근정포장 수훈. 박사논문 「중국과 북한의 전략적 선택과 대응에 관한 연구」. 책 속으로 * 마오쩌둥이 김일성과 직접 대면한 것은 1950년 5월 13일 김일성이 무력 남침계획에 대한 마오쩌둥의 동의를 얻기 위해 중국을 비밀 방문했을 때가 처음이다. 첫 공식회담에서 마오쩌둥이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인상은 두 가지 점에서 심기가 불편했다. 첫째는 김일성이 스탈린을 추종하면서 마오쩌둥의 독자적인 권위를 별로 존중하지 않는 언행을 보인 점이다. 김일성은 이미 4월 10일 스탈린과의 모스크바 회담에서 허락을 받은 무력 남침계획을 전달하면서 마오쩌둥에게 동의를 얻고자 했다. 이를 사전에 알지 못하고 있던 마오쩌둥은 김일성이 전달한 스탈린의 의견을 반신반의했다. 저우언라이 총리 겸 외교부장을 한밤중에 소련 대사관에 직접 보내서 스탈린에게 친전 전문으로 문의 확인한 이후에야 비로소 김일성의 전언을 받아들였다. 마오쩌둥은 자신을 빼고 스탈린과 김일성이 군사행동을 결정한 데 대해 불만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모스크바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김일성이 이에 아랑곳 않고 회담이 끝나자 모든 의제에 관해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소련 대사에게 선언을 하면서 득의양양得意揚揚해하는 태도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당시 곤혹스런 입장의 마오쩌둥으로서는 김일성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을 리 없다. 마오쩌둥과 김일성의 첫 공식회동은 이렇게 마음속에 응어리를 남기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끝났다. 마오쩌둥과 불편하게 헤어진 김일성은 귀국 이후 마오쩌둥에게 전쟁 준비나 개전과 관련한 어떠한 정보도 더 이상 알리지 않았다. 소련의 무기 운반도 중국의 ‘창춘長春철도’를 이용하지 않고 해상으로 선박을 이용하여 북한에 들여왔다. 그리고 김일성은 전쟁 발발 후 사흘째 되는 날 비로소 무관 한 명을 보내 전황을 중국 측에 통보하였다. 이에 대해 마오쩌둥은 자신의 통역인 스저師哲에게 “그들은 우리의 이웃인데도 전쟁 발발 문제를 우리와 논의도 없이 겨우 이제야 통보를 해왔다”고 노기를 보였다. 훗날 두 사람의 관계는 물론 북중관계가 내막적으로 원만하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서부터 이미 잉태되고 있었다. (74~75쪽) * 2002년 북한의 신의주특구 설치 좌절에 대한 일화는 북중관계의 허虛와 실實, 그리고 양국 간 민감한 이익 충돌과 불신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주룽지朱鎔基 총리는 2001년 1월 상하이上海를 방문한 김정일로부터 신의주특별행정구 구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러한 구상이라면 신의주보다 개성이 더 나을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 인접한 단둥, 다롄과 경쟁관계가 되는 신의주보다는 한국에 가까운 황해도 지역에 개방특구를 설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의 충고였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러한 조언을 듣지 않고 2002년 9월 신의주특별행정구 지정을 발표하고,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한 양빈楊斌 어우야歐亞그룹 총재를 초대 행정장관에 임명했다가 결국 중도 하차함으로써 타격을 받았다.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에 임명된 양빈은 신의주로 출발 직전인 10월 4일 새벽 중국 공안당국에 연행됐다. 중국 외교부는 4일이 지나서야 기자 브리핑에서 “불법 활동에 관여한 혐의로 양빈을 조사 중”이라고 확인해주면서도 “양빈사건과 신의주특구는 관계가 없다”고 관련성을 부인했다. (123~124쪽) * 1975년 4월 18일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은 중난하이中南海 관저에서 마오쩌둥과 마주 앉았다. 당시는 미국의 베트남전 철수가 임박한 가운데 캄보디아에서는 전날 크메르루주 반군 지도자 폴 포트가 친미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정권을 수립한 데 이어, 2주 후 베트남전에서는 사이공이 함락되던 시점이었다. 션즈화沈志華 교수에 따르면, 김일성은 마오쩌둥과의 비밀회동에서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위대한 승리를 얻어 우리는 매우 기쁘다”며 한반도에서도 무력통일을 시도하고 싶다는 뜻을 마오에게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마오는 (백내장으로) 눈이 좋지 않다며 화제를 돌리고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대화를 끊었다. 이렇게 마오쩌둥은 무력통일의 꿈을 버리지 못한 김일성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고 구체 발언 기회를 차단했으며, 제2차 한국전쟁 발동 의지를 가지고 방중했던 김일성은 마오쩌둥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이러한 마오쩌둥의 냉담한 태도를 보면서 김일성은 제2의 남침을 하더라도 미국과 관계 개선을 시작한 중국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직감하고 귀환했을 것이다. 마오쩌둥이 김일성의 제2차 한국전쟁 의도를 외면했던 이유는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방중 이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 분위기에 장애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중소 대립으로 안보위협에 직면한 중국은 미국과의 제휴로 위기를 돌파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공동의 이익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인도차이나 공산화 도미노에 편승하여 제2의 한국전쟁을 시도할 목적으로 방중했던 김일성은 마오쩌둥의 반대에 부딪혀 남침 구상이 좌절됐다. 이 회담을 계기로 김일성은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은밀히 핵개발을 진척시키는 등 독자 노선을 걸었다. (210~211쪽) * 김정일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대한 반감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덩샤오핑을 수정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1983년 6월 후계자 신분으로 비밀 방중을 마치고 귀국한 김정일은 즉시 노동당 중앙위 제6기 7차회의를 소집하여 귀국보고를 하면서 “중국 공산당은 이제 사회주의가 완전히 없어졌다. 수정주의만 남아 있을 뿐이다. 중국의 4개 현대화 노선도 ‘자본주의로의 길’이며, 수정주의 노선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격렬하게 비판했다. 이 소식은 중국에도 전해졌고, 이에 대한 덩샤오핑의 노기는 대단했다. 덩샤오핑의 입장에서는 아직 후계자에 불과한 풋내기 김정일이 사회주의 혁명의 대선배인 중국 지도자를 ‘수정주의자’로 꾸짖는 무도함을 용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애정 깊은 북한의 앞날이 걱정스러웠다. 이에 덩샤오핑은 그해 여름 ‘베이다이허北戴河 휴가’로 위장한 채 다롄의 방추이다오棒槌島 별장에 가서 김일성과 극비 수뇌회담을 가졌다. 김정일의 행동에 대한 덩샤오핑의 엄중한 지적을 받은 김일성은 귀국 후 잘 타일러 사죄 방중을 시키겠다는 약속과 함께 덩의 양해를 구했다. 사죄를 위한 중국 재방문을 완강하게 거부하던 김정일은 마지못해 그해 9월 중국을 재차 방문했다. 자리 권유를 마다하고 시종 선 채로 덩샤오핑의 이야기를 경청한 김정일은 선전深?경제특구 현장을 학습한 이후에야 귀국했고, 중국 측은 김정일 후계에 대한 승인의 뜻을 평양에 통보했다. (244쪽) * 제3차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한과의 갈등을 해소하려 노력했지만, 김정은이 2013년 말 장성택을 포함한 친중 경협파 인물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면서 그러한 노력은 완전 물거품이 되었다. 특히 장성택 처형의 근거 중에 하나였던 “나선특구를 외국에 팔아먹은” 혐의는 바로 나선지대에 투자한 중국을 지칭하는 것이란 점에서 북중 경협사업에 찬물을 끼얹었다. 2014년 7월 3일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이례적으로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여 ‘한중 공동성명’에서 ‘북핵 불용’ 기조를 재확인했다. 이는 중국의 대한반도 외교사에 기록될 만한 상징적인 ‘사변’으로서 시진핑의 북한에 대한 불편한 심기의 표출이라는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은 시진핑의 방한과 북중관계의 악화에 대해 불신과 반감을 드러냈다. 2014년 7월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는 “일부 줏대 없는 나라들이 미국을 맹종해 구린내 나는 꽁무니를 따르면서 저저마다 가련한 처지에 이른 박근혜를 껴안아보려고 부질없이 왼심(조바심)을 쓰고 있다”고 비꼬았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동조하면서 한국과는 정상외교를 행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비난이다. (263~264쪽) * 그런데 중국에게 있어 북핵문제는 ‘양날의 검’이다. 북한이 핵을 개발해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세력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중국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다. 강하게 막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핵 때문에 북한이 미국에게 가까워지고 북중 간에 마찰이 일어난다면 북한은 거꾸로 중국을 위협할 수도 있다. 중국이 북한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이유이다. 북한이 친미국가가 되는 것은 중국에게는 가장 부담스러운 시나리오다. 시진핑이 2018년 3월 말 트럼프와 김정은의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서둘러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극진하게 환대하고, 40일 만에 또다시 다롄에서 회동을 가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은 자신의 체제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핵을 개발하는 것도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이고, 궁극적으로 핵으로 안전보장을 구매하려는 대상국도 미국이다. 역설적이게도 북한은 친미를 위해 반미를 해왔다. 미국이 ‘전략적 인내’를 한다면서 들은 척을 안 하니까 ‘벼랑 끝’까지 모험을 고집한 것이다. (463~464쪽) 출판사 서평 왜 다시 북중관계인가! 북핵 실험과 북미, 북중의 잇따른 정상회담 등 널뛰는 국제정세 북중관계에 대한 연구는 이미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그동안의 연구는 북중관계의 성격을 동맹이나 ‘전통적 우의’라는 틀 속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미시적인 분석에 치우쳐 협력과 갈등이라는 변화무쌍한 북중관계의 객관적 실체와 정치적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1950년 ‘항미원조’ 명분으로 연합전쟁을 치르며 혈맹관계를 맺은 북한과 중국은 지금도, 여전히, 혈맹관계인가. 북한은 2006년 10월 이래 여섯 차례 핵실험을 강행했다. ‘중국의 문 앞에서 사달을 일으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던 중국은 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혹은 발휘하지 않는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다섯 차례 몰아치기 정상회담을 가졌다.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의 특사에게 외교적 결례를 범하며 굴욕을 안기는 등 냉랭한 기류가 이어지던 양국이었다. 그렇다면 2018년 이후 북중관계는 정상화된 것인가. ‘전통적 우의관계’로 완전히 복원된 것인가. 양국이 내세우는 ‘전통적 우의관계’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 해답이 모두 이 책에 들어 있다. 어쩌면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궁금할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살짝 엿보자면, 중국은 북한문제와 북핵문제를 분리해 접근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일관한다. 이는 ‘북한’이라는 전략 자산과 ‘북핵’이라는 전략적 부담 사이의 안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중국에게 있어 북한과 관련한 문제의 본질은 미국의 영향권이 한반도 북부까지 확대되고, 북한이 지정학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전초기지가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있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북핵문제에 대해 강경한 반대 입장을 취해 북한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적절히 조절하여 북한 붕괴를 방지하는 것이 국익에 더 부합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북중관계의 전개와 정책 결정 과정을 ‘전략적 선택’의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양자 간 전략이익 공유의 구조를 규명하고, 나아가 북ㆍ중 갈등과 협력의 모순적인 상관관계를 ‘이익균형’의 틀 속에서 설명한다. 즉 북ㆍ중 양국 관계에는 ‘공생의 공간’과 회귀 구심력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북중관계를 지배하는 내재 규율과 그 본질적 특성 전략이익을 공유하는 공생의 공간 그리고 ‘전략적 공생’ 이 책은 북중관계의 성격을 먼저 전체 역사적 맥락에서 찾아보고, 그 속성이 양국의 정책 변화에 반영되는 형태를 전략적 선택의 틀 속에서 재해석함으로써 북한과 중국의 상호관계를 지배하는 내재 규율과 그 본질적인 특성이 무엇인지를 규명한다. 서론에서는 이론적 근거와 개념적 정의, 연구설계의 분석틀을 소개하고, 1부와 2부는 각각 중국과 북한이 역사적 전개 속에서 상대국에 대해 실행에 옮겼던 주요 정책을 중심으로 상호 전략적 선택과 대응의 성격을 주요 시기별로 분류하여 고찰하고 있다. 이 같은 동태적 접근을 통해 북중관계의 특징과 기본 영향요인을 선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인물, 국가, 국제체제라는 세 가지 분석 수준을 이용하는데, 국제체제 요인은 지정학, 냉전 질서와 세계화, 동북아의 특수한 외교환경 등을 포괄하고, 국내 정치적 요인은 국가이익과 정체성, 국가이념과 대외전략, 외교정책 결정 등의 요소를 포함하며, 정책결정권자 개인적 요인은 최고권력자의 행동을 중심으로 개인적 선호, 인식, 경험, 상대국 지도자와의 친분 등을 주목한다. 3부는 1부와 2부에서 검토한 중국과 북한의 상호 전략적 선택의 행동을 바탕으로 그 선택에 영향을 미친 핵심요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정리하고 있다. 전략적 이익균형의 관점에서 북중관계를 결정하는 핵심요인 간 상관성을 분석하고, 실제 양국 간 상호 정책적 대응과 이익 배분 과정에 나타나는 동태적 함의를 해석하려는 것이다. 이어서 4부에서는 특정 국가 간 관계 설정이 기본적으로 게임의 법칙에 의해 작동된다는 관점에서 ‘전략적 선택’의 구조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선택과 대응의 상호 구조에는 전략이익을 공유하는 공생의 공간이 있으며, 공생의 공간을 지배하는 논리가 바로 ‘전략적 공생’이라는 결론을 추출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대북한 역할은 군사개입, 동맹 파트너, 방관자, 조정자, 균형자, 전략적 후견국 등의 형태로 변화를 겪었고, 북한의 대중국 역할은 동맹, 자주, 이탈, 편승, 거부, 전략적 접근의 형태로 반전을 거듭해왔지만, 결국 양국 간 상호 정책 결정의 바탕에는 각 시대별 국가이익의 총합에 기초한 전략적 선택의 원칙이 일관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북중관계의 미래 전망은? 저자는 북한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표면적인 현상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두 나라 사이의 ‘밀당’ 역시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그동안 북중관계의 수많은 우여곡절과 불신의 역사를 감안하면, 양국 관계가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일이다. 북중관계는 ‘좋은 시절’이 오래가지 않는 것처럼, 반대로 ‘나쁜 시절’도 오래가지 않는다. 중국과 북한은 전략이익을 공유하는 ‘공생의 공간’에서 선택적 관여와 선택적 편승을 교환하는 전략게임을 반복하며 유연한 ‘공생관계symbiotic relationship’를 지속 유지해 나갈 것이다.”(491쪽)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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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영토분쟁: 타협과 무력충돌의 메커니즘
- 저자 : 테일러 프레이블
- 출판사 : 김앤김북스
저자소개 저자 : 테일러 프레이블 M. Taylor Fravel 스탠퍼드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하버드 대학 연구원과 미국 학술원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2004년부터 미국 MIT 대학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9년부터 동 대학의 안보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이 외에도 미중관계 전미위원회(National Committee on U.S.-China Relations) 위원이자 아시아정책연구소(National Bureau of Asian Research) 책임연구원이며, 학술지 〈Security Studies〉, 〈Journal of Strategic Studies〉, 그리고 〈The China Quarterly〉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국 군사 및 안보정책을 중심으로 영토 분쟁, 남중국해 문제 등 역내 안 보 현안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Strong Borders, Secure Nation: Cooperation and Conflict in China’s Territorial Disputes〉와 〈Active Defense: China’s Military Strategy Since 1949〉가 있다. 저자의 최근 연구성과와 프로젝트는 https://taylorfravel.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역자 : 장성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샌디에고 캠퍼스캠퍼스(UCSD)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했다. 현재 국방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추천사 찰스 프리먼 주니어(미국 전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이래로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영토분쟁을 경험한 중국을 활용해 언제 국가들이 영토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전쟁을 감행하거나 협력할 가능성이 높은가에 관한 가설을 구성하고 검증한다. 중국 변경지역... 더보기 로버트 S. 로스(보스턴 대학 교수) “저자는 중국의 방대한 공식 기록물들을 정교한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분석했고, 영토분쟁의 국제정치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론적 접근은 물론, 중국의 국경분쟁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최고의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앨러스테어 이언 존스턴(하버드 대학 교수) “중국이 자국의 영토분쟁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분석한 탁월한 성과물이다. 극히 중요하지만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이 분야에서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기준이 될 것이다.” 책 속으로 1949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은 23건의 현안들 중에서 17건의 분쟁을 해결해 놓았다. 해결한 대부분의 분쟁 사례들에서 중국은 분쟁 지역을 분할함에 있어서 상대국가와 타협을 하였으며, 최종적으로 대상지역의 절반도 채 확보하지 못하는 해결방안에 동의한 사례도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6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으니, 대만, 인도, 부탄, 동중국해의 센카쿠 열도尖閣列島, 釣魚島, 남중국해의 파라셀 제도Paracel, 西沙群島및 스프래틀리 군도Spratly, 南沙群島이다. 이들 사안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냉전이 종식된 이래 어느 때보다도 강경해지고 있으며, 이제 이들 지역은 모두 언제든지 긴장이 고조될 수 있는“열점hot spots”으로 간주되고 있다. 스카버러초Scarborough Shoal와 그 주변 수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제외한다면 그동안 중국이 무력 사용을 기피해 오기는 했지만, 이 책에서 다룬 평온했던 과거 몇몇 기간들에 비해서 최근에 들어서 비타협적이고 호전적으로 변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왜 발생했는가? -P. 9 1959년 티베트에서의 봉기는 중국이 영토의 보전과 관련하여 그때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가장 큰 내부적 위협이었다. 티베트의 봉기는 중국이 미얀마, 네팔 및 인도와 영토분쟁 상태를 유지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극적으로 증가시켰다. 이에 중국은 영토에 관한 부분에서 양보를 하되 이들 국가가 중국에 협력하여 티베트 반란세력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고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했다. 1962년 봄, 대약진 운동大躍進運動실패에 따른 경제위기로 고통을 겪던 와중에 변강 지역, 특히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에서 또 다른 소수민족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소요 사태는 중국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안정성 모두에 대한 내부적 위협으로 비화하여 인접국가들과의 기존 분쟁들을 현상 유지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증가시켰다. 이에 중국은 외부로부터의 긴장요인을 완화함으로써 경제를 재건하고 이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북한과 몽골,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소련과 겪고 있던 영토분쟁에서 타협적 해결을 추구해야 했다. -P. 30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인접국가인 인도와 소련의 도전에 무력으로 대응했던 사례들에서 중국의 내부적 불안정은 중국으로 하여금 자국의 협상력 감소를 더욱 민감하게 인식하도록 작용했는데, 중국의 지도자들이 이들 국가가 중국의 내부적 어려움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고자 한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1962년 10월 인민해방군은 인도와의 국경 협상이 결렬된 후 분쟁 지역의 국경 전역에 걸쳐 인도군 진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 사례에서 중국이 무력 충돌 수준으로까지 갈등을 고조시킨 것은 분쟁 중인 국경 지역에 대한 인도의 병력 증강 및 서부 지구中印邊界西段점령을 저지하는 한편, 대약진 운동실패 후의 경제위기로 인해 심화된 중국의 입지 약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1969년 3월 인민해방군 정예부대가 소련과 분쟁 중이던 우수리강Ussuri의 전바오다오珍寶島인근에서 소련군 정찰부대를 기습한 이유도 이와 유사하 다. 분쟁 지역 국경선 일대에 대한 소련의 병력배치, 사회주의 국가들의 내정에 대한 소련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브레즈네프 독트린Brezhnev doctrine, 그리고 소련군의 공격적인 정찰 방식이 이 지역 분쟁에서 중국의 입지를 약화시켰으며, 내부적으로는 문화대혁명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성이 그러한 입지 약화를 심화시켰다. -P. 32 원해도서遠海島嶼 지역의 경우 증국은 1957년에 베트남과의 분쟁을 타협적으로 해결한 사례가 있으나, 그 외에는 이들 도서의 잠재적인 경제적, 전략적 가치 때문에 다른 국가들에 영토적으로 양보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이들 지역에서 자국의 입지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약화되었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파라셀Paracels 제도의 도서나 스프 래틀리Spratlys 군도의 지형물들을 점령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1970년 초반 남중국해에서 인근 국가들의 석유탐사 및 무인도를 비롯한 각종 지형물 점령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취약성이 부각되는 동시에 통제권 확보의 중요성이 증대하였다. 이에 중국은 제한적이나마 해군력을 투입할 수 있던 지역 중 하나인 파라셀 제도의 크레센트 군도Crescent Group에 대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여 점령했다. 1980년대 후반에도 중국은 스프래틀리 군도의 지형물들을 몇 개 점령했는데, 이는 말레이시아가 주인 없는 암초나 모래톱을 확보해 나가고 베트남이 병력주둔을 확대하면서, 권리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점유하지 못하고있던 이 지역에 대한 자국의 입지가 더욱 약화된 이후에 취해진 조치였다. -P. 32 중국이 커다란 영토적 변화를 추구하거나 영토와 관련한 자국의 권리를 주장하며 빈번하게 무력충돌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이 폭력적인 성격을 띠게 될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영토문제가 중국이 다른 국가들과 충돌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다른 어떤 이슈들보다도 영토문제가 국가 간 분쟁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중국이 17개 분쟁을 타협적으로 해결한 것은 향후에 충돌로 비화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사전에 제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협정에서 중국은 상대국가의 주권과 영토 보전의 권리를 인정했으며, 과거 19세기 초반 청淸의 영토였다가 상실했던 지역들에 대해서는 중국이 향후에라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여지를 제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현재의 국경을 지키고 본토의 미수복 지역들을 회복하기 위해 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오고 있다. 핵심적인 이익이 걸렸을 때 중국은 무력을 사용할 것이다. 또한 군사적 역량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과거에 비해 더욱 효율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만을 둘러싼 충돌 가능성은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중국의 지도자들이 통일의 전망이 장기적으로 볼 때 약화되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는 한 무력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른 영토분쟁 사례들의 경우에, 중국은 자국의 협상력이 약화되고 있을 때 무력사용을 불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출했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지는 않았다. -P. 34 국경문제에 대한 북한과 중국의 협상은 1962년 6월 저우언라이와 주중 북한대사의 회동 이후인 9월에 시작되었다. 10월 3일경에는 양국의 외교부 부부장들이 협상에서 영토분쟁과 관련하여 논의한 내용들을 정리한 의사록에 가조인했다.204 10월 12일에는 저우언라이와 북한지도자 김일성이 평양에서 국경조약에 서명했다. 양측은 분쟁의 핵심이던 백두산을 정상에 있는 천지天池를 가로질러 분할하기로 합의했다. 훗날 저우언라이는 닉슨Richard Nixon 미 대통령에게“우리는 결국 그 호수를 분할하여 공유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한 연구자는 이러한 분할의 결과로, 중국이 백두산 동사면에 대해 추가로 양보를 한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은 분쟁 지역의 약 40%, 북한은 60%를 확보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P. 161 중국 서부 변강 지역의 정치적 안정성은 1980년대 말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티베트에서는 1987년 9월 소규모 승려 집단이 티베트의 독립을 주장하며 집결하면서 최초의 불안정 징후를 보였다. 1989년 3월 라싸拉薩에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는 이를 진압하던 부대가 군중을 해산하기 위해 실탄을 사용하면서 폭력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1957년 티베트 봉기 30주년을 맞아 소요 사태가 확산될 것을 우려한 중국은 곧 계엄령을 선포했다. 우려되는 바가 확실히 있기는 했지만, 티베트에서 이와 같은 제한적인 규모의 민족주의ethno-nationalism 봉기가 부활한 것이 그 자체로서 특별히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은 1950년대에 비해 훨씬 더 강해졌 고, 소요 사태는 도시 한 곳에 한정되었으며 그나마 거의 비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러나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지도자들은 변강 지역에서 소수민족 집단들이 벌이는 소요 사태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1989년 5월 천안문 사태의 열기는 우루무치烏魯木齊까지 번져나가, 수천 명의 대학생들이 베이징의 동료학생들을 지지하는 가두행진을 감행했다. -P. 209 영토분쟁에서 중국의 행태가 대체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더욱 강해진 중국은 무력 사용을 자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영토분쟁에서 중국은 자국의 취약성이 커지거나 장악력이 저하될 때 이에 대응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설적이지만, 더 강해진 중국은 남아 있는 영토분쟁들에서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낮으며, 어쩌면 다른 유형의 갈등에서도 그럴 것이다. 이러한 예측은, 그동안 중국이 우세한 위치를 점한 상태에서 다수의 분쟁에서 기꺼이 타협하려는 모습을 보여줘 왔지만, 앞으로도 중국이 반드시 타협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리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더 강해진 중국이 반드시 더 호전적일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P. 419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인하여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불안정성이 증대할 수도 있다. 첫 번째, 인민해방군이 해군 현대화 및 함대규모 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남중국해에 대한 순찰 횟수와 분쟁 해역에 대한 압박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 지역의 분쟁에서 중국의 입지 강화는 다른 국가들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고, 이들 국가가 다툼이 있는 도서와 암초 주위에 해군 전력을 증강시킨다면 상호 적대감이 고조되는 악순환에 빠져들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스프래틀리 군도 분쟁 에서 중국이 다른 국가들에게 공격적 행동을 취한다면 중국은 동남아시아를 포용하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에너지 안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스프래틀리 군도 주변 수역 해저에 존재한다고 추정되는 천연가스와 유전을 포함한 석유자원에 대한 접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 모든 이해 당사국들이 자국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할 것이고, 그러한 일방의 노력이 다른 국가들에게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것으로 비추어진다면 적대감의 악순환이 일어나고 무력 사용의 위협이나 실제 행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P. 421 출판사 서평 중국은 과연 대만이나 센카쿠 열도를 무력으로 점령할 것인가 중국의 행동을 예측하려면 그들의 목표, 전략, 취약성을 알아야 한다 14개국과 육상 경계를, 6개국과 해상 경계를 맞대고 있는 중국이 경제적, 군사적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중국과 접경 국가들간 영토 문제를 둘러싸고 긴장의 파고가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중국은 과연 대만을 병합하기 위해 무력침공을 단행할 것인가? 중국이 일본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센카쿠 열도를 점령할 것인가? 중국-인도 간의 영토분쟁은 전면전으로 비화할 것인가? 중국은 남중국해를 장악하기 위해 인근국가들은 물론 미해군과의 무력충돌을 불사할 것인가? 이러한 의문에 대해 중국의 군사안보와 영토분쟁을 연구해온 MIT 대학의 테일러 프레이블 교수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른 분석과 예측을 제시한다. 프레이블 교수는 최근 중국의 강경한 태도가 반드시 전쟁의 위험이 높아졌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무력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중국이 무력충돌을 선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한다. 1949년 건국 이후 중국은 2008년까지 23건의 영토분쟁 현안 중 17건의 분쟁을 타협적으로 해결했고, 6건이 미해결된 채 남아 있다. 중국의 영토분쟁 사례들을 연구해온 프레이블 교수는 중국은 영토문제를 둘러싼 주변국가들과의 갈등을 무력에 호소하기보다는 분쟁해결을 지연시키거나 타협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였으며 오늘날에도 중국이 무력수단에 의한 분쟁해결을 특별히 선호한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이는 중국이 영토문제에서 무력사용을 배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제로 중국은 강한 군사력을 가진 인접국가인 소련, 인도, 베트남과 영토문제로 몇 차례 무력충돌을 벌였고 남중국해에서 몇몇 섬들을 무력으로 점령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중국의 전투기들은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을 수시로 침범한다. 다만 이러한 무력사용은 침공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대개 상대국가를 압박하기 위한 목적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프레이블 교수는 영토분쟁에 대한 중국의 대응에 있어 타협 또는 갈등고조 전략을 선택하는 일정한 패턴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이 책에서 그러한 패턴을 규명하고 있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덜한 변경 지역 영토분쟁과는 달리 본토 지역이나 핵심이익이 걸려있는 영토분쟁에서는 예외 없이 강경한 태도를 고수해오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국력이 강해지면서, 중국의 핵심지역은 대만을 넘어 남중국해, 동중국해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은 대만, 인도와의 국경, 센카쿠 열도, 남중국해 도서와 같은 핵심지역 분쟁에서 무력수단을 동원해 단기간에 해결하기보다는 그 지역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렇게 중국은 총 한발 쏘지 않고 홍콩과 마카오를 다시 손에 넣었다. 남중국해에서는 비군사조직인 해상민병대를 동원해 지형물들을 장악하고 있다. 인도와의 국경 지역에서는 인도와 티베트의 연결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이 책은 중국이 그 동안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전략을 선택해왔는지 설명함으로써 향후 영토분쟁에서 중국의 전략과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영토분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장악하게 되면 한국의 생명선을 중국이 쥐게 된다. 중국이 센카쿠 열도를 장악하면 동중국해로 나아가는 문이 열리게 된다. 중국은 서해를 내해화하려 할 것이고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과 이어도 영유권에 본격적으로 도전해 올 것이다. 남북통일 과정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중국과의 경계문제들이 제기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중국의 영토분쟁 문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며, 그러한 중국의 전략과 행태들을 파악하기 위해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중국 군사안보 전문 테일러 프레이블의 〈한국어판 서문〉 영토분쟁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는가 〈중국의 영토분쟁: 타협과 무력충돌의 메커니즘〉은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고 10여 년이 지나서야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1949년 건국 이후 중국의 영토분쟁 사례들을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이용해 종합적으로 분석한 프레이블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자신의 과거 분석과 관점을 돌아보고 그 사이에 영토분쟁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중국의 영토분쟁에 관한 프레이블 교수의 기본 관점은 중국은 건국 이래 60여년 간 중국은 영토문제를 둘러싼 주변국가들과의 갈등을 무력에 호소하기보다는 타협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신생국가 중국은 건국 이후 심각한 내부적 위협(티베트, 신장 지역의 반란, 대약진운동의 실패,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태)에 직면했고, 체제의 안정과 변강 지역에 대한 통제를 확고히 하기 위해 인접국가들과의 영토분쟁을 타협적으로 해결했다는 것이다. 즉, 중국은 티베트와 신장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인정받는 대신에 일부 영토적 양보를 제공하는 식으로 분쟁을 해결했다. 반면 인도나 소련, 베트남과의 영토분쟁에서는, 강한 군사력을 가진 상대라 하더라도 공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 장악력 저하를 막기 위해 무력충돌을 감행했다고 주장한다. 프레이블 교수는 이러한 타협과 갈등고조(escalation)라는 대응 방식의 차이를 분쟁지역에 대한 장악력(claim strength)의 변동과 중국 체제에 대한 대내적, 대외적 위협의 함수관계로 설명한다. 프레이블 교수는 이런 분석이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2021년은 10여 년 전에 비해 중국의 입장이 보다 강경해지고 있고 분쟁지역들은 언제든 긴장이 고조될 수 있는 열점(hot spot)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이 비타협적이고 호전적으로 변한 것으로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도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미해결 상태에 있는 사안들(대만, 인도, 부탄, 동중국해의 센카쿠 열도, 남중국해의 파라셀 제도 및 스프래틀리 군도)이 애초부터 해결이 가장 어려운 분쟁이었다는 점, 대부분의 사안이 해양권이나 대양진출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라는 점, 시진핑의 공산당총서기 취임 이후 주권 수호가 훨씬 더 강조하고 있다는 점, 중국의 국력이 모든 측면에서 더 강해졌다는 점 등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프레이블 교수는 중국이 과거에 비해 더 강경해졌다는 점이 영토문제로 전쟁이 벌어질 위험성이 더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중국의 강경한 태도는 중국이 자국이 바라는 조건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음을 자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결국 중국은 강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자국의 입지나 장악력을 계속 강화시켜 나갈 것이고, 주변 국가들은 그런 중국에 대항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영토분쟁에 관한 협력과 갈등고조 이론을 통해 중국의 사례들을 분석한다 중국은 어떤 상황에서 타협 전략을, 어떤 상황에서 갈등고조 전략을 선택하는가 프레이블 교수에 의하면, 국가들은 영토분쟁에 직면하는 경우, 지연 전략. 타협 전략, 갈등고조 전략이라는 3개의 선택지를 갖게 된다. 영토분쟁의 특성상 국가들은 자국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기 때문에 대개 분쟁해결을 늦추는 지연 전략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지연에 따른 비용이 클 경우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타협 전략을 택하거나 무력사용을 위협하거나 감행하는 갈등고조 전략을 택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전략을 선택할지는 분쟁지역의 중요도, 대내외적 안보위협, 장악력 등의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분쟁지역의 가치가 낮고, 장악력이 강한 상태에서 대내외적 안보위협이 높을 경우 타협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면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다. 인민해방군은 1949년 신장 지역을, 1950년 티베트를 점령했다. 1960년대 중국은 대약진 운동의 실패와 문화대혁명으로 체제가 불안정해진 가운데 티베트인들과 위구르인들의 반란과 봉기에 직면했다. 중국은 이들 소수민족들과 주변국의 연계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처럼 내부적 안보위협이 높은 상태에서, 중요도가 덜한 변강 지역 분쟁에서 중국은 타협을 통한 해결에 나섰다. 그렇게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몽골, 미얀마, 네팔, 등과 분쟁을 해결했다. 중국은 북한과도 1962년 백두산 지역에 대한 영토분쟁을 해결했는데, 프레이블 교수는 당시 중소분쟁이라는 대외적 위협 상황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고 분석한다. 1990년대에도 중국은 천안문 사태와 소수민족 반란, 사회주의권의 붕괴라는 대내외적 위협 상황에서 러시아, 라오스, 베트남, 부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인도 등과 타협을 통한 해결을 시도했다. 중국은 소련과 인도, 베트남과는 영토 문제로 몇 차례 무력충돌을 벌였다. 소련과는 1960년대 말 아무르강 유역에서, 베트남과는 1980년대에 국경 근처의 고지들을 둘러싸고 무력충돌이 전개되었다. 인도와는 1956년 중국이 분쟁지역인 익사이친을 관통하는 신장공로를 건설하면서 분쟁이 본격화되었고, 1962년 무력충돌이 있은 이후 오늘날까지 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상대 국가가 공세적으로 나오고 자국이 장악력이 약화되는 경우 강경대응을 선택했다. 하지만 무력충돌은 대부분 제한적이었으며 침공이 아니라 상대를 압박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대만과는 중국 본토에 인접한 진먼다오를 둘러싸고 무력충돌이 지속되었으나 1970년대 미중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되고 미국의 위협이 사라지면서 무력충돌도 중지되었다. 중국은 영토분쟁에서 무엇을 가장 중시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중국의 아킬레스건은 대만이 아니라 티베트와 신장이다 프레이블 교수는 방대한 중국측 자료들을 이용해 각각의 분쟁 사례들에서 중국의 입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중국 지도부가 누구인가에 관계 없이 중국이 일관된 대응 패턴을 보여왔다고 말한다. 그러한 일관성은 중국 지도부는 공산당 지배체제의 안정과 영토적 통일성을 가장 중시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은 영토적 통일성을 넘어 중국몽으로 대변되는 중국 중심의 패권적 질서를 국가목표로 추구하고 있다. 이는 패권국 미국과 서태평양의 지배권을 두고 전략적 경쟁을 벌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중국은 먼저 자신의 근본적인 취약성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의 영토적 통일성은 보이는 것만큼 확고하지 않다. 중국이 매번 “하나의 중국”을 강조해야만 하는 현실이 그 반증일 수 있다. 티베트와 신장 변강지역은 중국 본토지역(homeland)과는 상당히 다른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사실상 독립국으로 기능해왔다. 중국 중앙정부의 행정적 관할 하에 놓이게 된 것은 1950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점령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이 대만의 독립 움직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티베트와 신장의 분리주의 운동을 우려하기 때문일 수 있다. 대만의 리덩후이 전 총통이 말했듯이, 대만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티베트와 신장의 분리주의에 또 다시 불을 댕기게 될 것이다. 중국은 영토분쟁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그 중에는 군사강국들이 적지 않다. 어느 한 전선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다른 전선은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결국 중국은 무력충돌을 회피하면서 각각의 분쟁지역들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선호하게 된다. 중국은 또한 영토분쟁에 대해 장기적인 전략을 갖고 있다. 장악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중국은 홍콩과 마카오를 다시 손에 넣었고, 대만의 운명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개입이 사라지는 순간, 어떤 무력충돌도 사실상 불필요해질 것이다. 어쩌면 중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 전에 대만이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대만을 무력침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남중국해, 센카쿠 열도, 대만 및 인도와의 영토분쟁에서 중국의 행보를 예측한다 미중의 전략적 경쟁은 중국의 영토분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남중국해, 센카쿠 열도, 대만, 인도와의 분쟁은 미중의 전략적 경쟁과 맞물리면서 점점 더 갈등의 파고가 높아져가고 있다. 저자의 기본적인 예측은 중국이 먼저 나서서 무력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다는 점이다. 대만해협 상공에서의 중국의 위협 비행이나 중국 항모 전단의 전개는 무력충돌을 위한 예비 조치가 아니라 장악력 혹은 입지를 유지하려는 시위행동에 가깝다. 중국은 푸젠성 코 앞에 있는 대만령 진먼다오조차도 점령하지 않고 있다. 프레이블 교수에 의하면, 중국은 자국의 입지가 강한 상태에서 갈등고조 전략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장악력이 취약해지는 상황에서 무력사용 위협이나 실행을 통해 자국의 결의를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이 선제적으로 무력충돌을 감행할 가능성은 낮지만 이들 분쟁지역의 불안정성과 긴장은 계속 증대하게 될 것이다. 인민해방군의 전력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면서 중국의 입지 강화는 다른 국가들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고, 이들 국가가 전력을 증강시킨다면 상호 적대감이 고조되는 악순환에 빠져들 위험성이 있다. 특히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지면서 남중국해에서 자원개발을 둘러싸고 분쟁이 격화되고, 제한적인 무력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인도와의 분쟁에서는 중국의 신장공로 건설 이후 중국의 입지가 강화된 상태이며, 인도는 그러한 상태를 받아들일 수 없고 중국 역시 티베트에 대한 인도의 접근을 허용할 수 없기에 무장된 대치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중국은 건국 당시부터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우려해왔다. 중국은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 있는 한 무력충돌을 선택하기보다는 자국의 입지와 장악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면서 분쟁 상대국들을 개별적으로 압박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만에 대한 중국의 지위,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지배, 인도와의 분쟁에서 티베트에 대한 확고한 지배력을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결국 중국은 시간이 자신의 편에 있다고 믿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큰 무력충돌 없이 이기는 전략을 추구할 것이다. 결국 이들 지역의 분쟁은 영토분쟁의 차원을 넘어, 서태평양을 지배하고자 하는 중국과 이에 맞서는 미국과 그 연합국들 간의 전략적 대결이라는 맥락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의 영토분쟁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이어도 영유권, 서해 배타적경제수역 분쟁 그리고 통일 이후 영토분쟁 한국과 중국은 어느 지역에서 어떤 식으로 영토분쟁을 벌이게 될 것인가? 그리고 중국은 어떤 전략으로 나올 것인가? 이 책에는 한국과 중국의 영토분쟁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그 이론을 한국과 중국 간의 영토분쟁에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중국 간 영토분쟁 이슈에는 이어도에 대한 관할권 및 서해 배타적경제수역 경계 문제가 있다. 그리고 통일 과정에서 중국은 북중 경계 지역에 대한 자국의 장악력 변동에 반응할 가능성이 높고, 조중국경조약(1962년)의 승계 문제와 간도지역 영유권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서태평양을 지배하고자 하는 중국은 먼저 서해를 내해화하려 할 것이고 동중국해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이어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게 될 것이다. 일단 중국은 이어도 주변수역과 서해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남중국해에서 그랬듯이 해상민병대나 어선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한국은 장악력 저하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제한적인 무력충돌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중국은 또한 향후 남북통일 과정에서 북중 경계지역에 대한 자국의 장악력 저하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경계지역에 대한 통일한국의 장악력이 높아지면 중국 동북 지역 한국계 소수민족이 동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패권적 의도를 갖고 있든 갖고 있지 않든, 부상하는 중국은 한국에 크나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고 서해와 동중국해, 더 나아가 서태평양에서 한국의 입지를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프레이블 교수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적했듯이, 중국의 국력이 강해질수록 분쟁지역에 대한 중국의 장악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고, 한국은 중국을 상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한국의 전략은 한미 동맹이든 쿼드 플러스든 중국과의 힘의 비대칭성을 상쇄하고 균형을 이루기 위한 방책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또한 중국과 인도나 베트남의 분쟁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즉, 분쟁지역을 장악하고 기정사실화하는 중국의 행동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갈등고조 전략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무력충돌을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14개의 나라들로 둘러싸인, 그리고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중국 자신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영토분쟁을 심도 있게 연구한 이 책은 자국 중심의 패권적 질서를 추구하는 중국이 한국에 가하는 그리고 앞으로 가하게 될 영토적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숙고하는 데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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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원이 된 중국 사영기업가들
- 저자 : 윤태희
- 출판사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책소개 베이징 저장촌 제1공작위원회 사례를 기반으로 사영분야 당조직을 통해서 나타난 개혁기 중국의 국가-사영기업가 관계를 분석하다 ! 이 책은 베이징에서 의류, 원단, 신발 도소매 판매를 주업으로하는 저장성(浙江省) 원저우시(?州市) 산하 웨칭(??) 출신 기업가들에 의해 설립된 사영분야 당조직 사례를 통해 개혁기 중국의 국가-사영기업가 관계를 분석한다. 베이징에서 사업에 성공하여 부를 축적한 사영기업가들은 모두 공산당원이 되었으며, 자신이 소속된 당조직인 ‘제1공작위원회(第一工作委??)’를 자신들의 ‘집(家)’이라고 불렀다. 당원이 된 사영기업가들은 1995년고향인 웨칭 지방정부의 후원으로 설립된 당조직을 통해서 기업의 성장과 발전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자신의 이익을 합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소개 저자 : 윤태희 푸단대학 영어영문학 학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학 석사, 동 대학 국제학 박사(2018년).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강사와 산둥대학 관리학원 방문학자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국제학연구소의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From Gray to Red: Party Building and the Transformation of Beijing’s Zhejiangcun”(co-author with Jong-Ho Jeong, 2020), “Bedfellows with Different Dreams”(co-author with Jong-Ho Jeong, 2018), “시진핑 시기 한국기업의 현지 경영환경 변화와 대응”(2020), “개혁기 중국 사회에서의 국가-사영기업가 관계에 관한 연구”(2019), “징진지 공동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사영기업가 관계에 관한 연구”(2018) 등이 있다. 책 속으로 현지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다양한 현상들에 따라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영분야 당조직은 국가-사영기업가 관계에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사영분야 당조직이 중앙의 정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형성·발전되었다면,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영분야 당조직을 통한 사영기업가 당원들의 적극적 거버넌스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또한 공산당의 영향력은 사영분야 당조직을 통해 강화되고 있는가? 만일 당중앙의 정책이 기층 사영기업가 당원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집행된다면, 그것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며, 그것이 가지는 정치사회적 함의는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사영기업가들의공산당 입당과 사영분야 당조직의 설립은 국가의 사영기업가에 대한 통제의 강화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사영기업가들의 교묘한 국가의 이용과 더 많은 자율의 확대를 의미하는가? (18쪽) 1989년 천안문사태 이후 주춤하였던 개혁의 열기가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 이후 새로이 확산되면서 중국의 사영분야 정책은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1992년 겨울의 남순강화를 통해 덩샤오핑은 “‘자본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의 판단기준은 사회주의 사회의 생산력 발전에 유리한가, 사회주의 국가의 종합국력 증가에 유리한가, 인민 생활수준의 개선에 유리한가가 주가 되어야 한다”고 언급하였고, 더욱 대담한 개혁개방 정책을 요구한 것이다. 특히 1992년 공산당14차 당대회(이하 14차 당대회) 이후 시장경제에 대한 이념적 논란이 종식되면서 사영분야는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78쪽) 이와 같이 사영기업가 당원들이 사회적·사업적으로 성공한 인사를 당원으로 충원하고자 하는 이면에는 당원이라는 신분이 주는 특혜를 성공한 사영기업가들끼리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가 자리하고 있다. 많은 사영기업가들은 여전히 신분의 합법화를 통한 자신의 경제적 이익의 보호를 위해 당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즉 웨칭 출신의 사영기업가들은 당조직 건설에 기반하여 ‘불법 유동인구에서 합법적인 기업가’로의 변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들 사영기업가들에게 있어서 당조직은 유동당원 사영기업가인 왕 선생이 지적한 바와 같이 베이징에서의 생존을 위한 ‘제2의 생명(第二?生命)’인 것이다. (123쪽) 본 연구는 유동인구 출신으로 성공한 사영기업가들에 의해 수립된 당조직의 형성과 발전, 내부 특성, 사회 거버넌스와 한계 등을 검토하였다. 다만, 본 연구는 단일사례 연구방법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웨칭에서 진출한 저장촌 출신의 이주민 기업가들에 의해 설립된 당조직인 제1공작위원회와 다른 일반적인 사영분야 당조직 또는 다른 이주민들에 의해 설립된 당조직 사례와의 비교분석을 통해 제1공작위원회가 가지는 특수성에 대하여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점은 본 연구가 현 단계에서 가지는 한계이며, 추후 연구를 통해 보완해야 할 과제이다. (252쪽)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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