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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경쟁이라는 신화 - <은폐된 전쟁>의 문제의식

  • 등록일

    2026-10-29

2026년 10월호 『인차이나브리프』 저자노트는 『은폐된 전쟁』의 필자인 한국외대 박홍서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패권 경쟁’, ‘세력전이’, ‘중국위협’, ‘투키디데스 함정’은 미중관계를 설명할 때 흔히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몇 가지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은 모두 패권국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의 충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미중 간 긴밀한 의사소통과 협력 의지가 없다면 양국 관계가 ‘비극’으로 종결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타당한가? 「은폐된 전쟁: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허상이 가린 두 개의 내전」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 자본이라는 글로벌 리바이어던 

미중관계를 바라보는 주류 시각은 일반적으로 국제정치의 ‘무정부성’이라는 전제를 딛고 있다. 국내 정치와 달리 국제정치는 폭력을 독점하는 리바이어던이 없으며, 따라서 국가들은 생존을 위해 상호 간 세력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논리다. 패권국 미국은 도전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은 미국의 견제를 돌파하기 위해 국력을 증강한다. 그러나 미중관계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미중 양국은 어떤 국가보다 자본주의 국제질서의 충실한 행위자라는 점에서 그렇다.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무역 시스템을 지켜야 한다.” 세계 최대 공산당의 총서기인 시진핑의 말이다. 2백여 년 전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며 등장한 공산주의 세력이 이제 자본주의 국제질서의 규범을 누구보다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자본주의가 국가들의 행동을 ‘규정’하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애초 자본주의를 실현하려고 만들어진 미국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영국 왕과 식민지 당국이 아메리카인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때문에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한 독립선언서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사유재산권을 의미하는 ‘행복’을 정부가 보호하지 못하면 언제든 타도될 수 있다는 독립선언서의 또 다른 구절은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미중 양국이 자본주의 국제질서의 근원적 파괴를 불사하고 군사충돌로 나아간다는 예측은 타당할까? 더욱이 승패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핵무기 시대에서 상호충돌 은 더더욱 현실성이 없다. 꼭 파국적 충돌이 아니더라도, ‘결별(디커플링)’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현실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 한탄하듯, 국가 간 질투심이나 적개심 때문에 주변국과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위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중 양국의 행태를 보면 결별할 의지가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트럼프 정권은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훔쳐간다”라는 이유를 들며 디커플링 가능성을 흘리고 실제로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결국 트럼프는 “미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 물건을 많이 팔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바꿨으며, 재무장관 베센트는 “디커플링은 불가능하다”라고까지 실토했다. 상호 협상을 통해 대중국 관세 부과를 유예하기도 했다. 트럼프 스스로 중국에 수백 개의 상표권을 갖고 막대한 소득을 얻고 있다는 사실은 미중 경제 관계의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이기도 하다. 

미국에 비해 중국은 미중 경제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 하고 있다. 일종의 방어적 입장이다. 개혁개방기 중국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 결국 달러패권체제로의 편승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보유한 막대한 외환의 50~60%가 달러화 자산이라는 사실은 중국이 미국의 경제적 압박에 방어적 태도를 견지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2025년 5천억 달러에 달하는 양국간 무역은 무엇을 의미할까? 베트남 등 우회로를 통한 미중 간 무역 수치까지 포함하면 미중 경제관계는 여전히 흔들림 없다. 다이하드, 차이메리카!


» 국가 중심성이라는 신화 

미중 양국이 무정부 상태 속에 있다는 가정이 비현실적인 만큼 양국이 각각 ‘단일체’라는 가정 역시 비현실적이다. 양국 안에는 다양한 세력들이 경쟁하기 때문이다. 미 민주당과 공화당은 사활적 경쟁을 벌이고, 중국의 정치는 문혁에서 보이듯 내전 상황까지 치달은 바 있다. 따라서 미중관계를 적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국의 통치권력이 상호 간 정책 수립 과정에서 무엇을 고려하고 있는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정책 결정은 양국의 통치권력들이 내리기 때문이다.

통치권력에게는 ‘외적’에 대한 고려뿐만 아니라 ‘내적’에 대한 고려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부로부터의 위협은 그 인접성과 일상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왜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훔쳐갔다”라고 비난하면서도 늘 전임 민주당 정권에 대한 공격으로 끝을 맺을까? 트럼프가 반복적으로 시진핑에, 푸틴에, 또 김정은에 우호적 태도를 보이는 것과 비교해 보면 민주당 세력에 대한 비난은 더욱 극적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구조적 현실주의 등 미중관계에 대한 주류 시각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들 시각에서는 통치권력과 국가는 등치된다. 미중 양국의 통치권력을 각각의 국가이익 수호라는 공적 목표에 충실한,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일하는 공리적 행위자라고 가정한다. 칼 마르크스는 주류 경제학을 두고 “규명해야 할 것을 가정한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 논리는 그대로 미중관계의 국가중심적 설명에도 적용될 수 있다.  

물론, 미중 갈등이 온전히 국내정치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 ‘환원주의’에 불과하다. <은폐된 전쟁>의 핵심 주장은 주류의 시각처럼 미중관계를 ‘반드시’ 국가중심적으로만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설명으로는 규명되지 못하는 상황들이 많기 때문이다.

타이완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타이완에 대한 중국의 강경 정책은 과연 중국의 국가안보 강화에 도움이 될까? 타이완에 대한 강경한 레토릭이나 군사훈련과 같은 행동은 오히려 중국의 국가안보를 훼손하는 것은 아닐까? 중국의 강경한 대응만큼 미국의 타이완 방어 의지 역시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타이완 내 반중 정서를 심화시켜 민진당 등 타이완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세력의 확대를 초래할 수도 있다.

1995~96년 타이완 해협 위기는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리덩후이의 미국 방문과 초대 민선 총통 선거를 앞두고 중국이 벌인 대규모 군사훈련이 중국의 국가 안보를 강화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리덩후이는 압도적으로 총통에 당선됐으며, 미국은 타이완 해협에 항공모함을 파견하기도 했다. 이후 미국은 미일 동맹 조정을 통해 타이완 문제에 개입하려는 의도를 보다 명확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시 장쩌민 정권은 이러한 상황 전개를 예측하지 못했을까? 그러지 못했다면, 장쩌민 정권의 중대한 ‘실수’이거나 ‘무능’을 의미한다. 그러나, 당시 장쩌민 정권이 직면했던 국내정치 상황을 놓고 보면, 강경 대응이 꼭 비합리적 선택이라고 볼 수는 없다. 

혁명 원로들에 의해 발탁된 장쩌민 정권은 태생적으로 그 정치적 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장쩌민 정권은 국유기업 개혁 등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이에 부정적인 보수파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이완 해협 위기는 이러한 중국의 국내정치 상황과 맞물려 있었다. 장쩌민 정권으로서는 국유기업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타이완 문제에 유약한 태도를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럴 경우 보수파들이 이를 구실로 정권에 맹공을 가해올 것은 명백했기 때문이다. 해협 위기 당시 장쩌민 정권은 왜 미국에 ‘침공 의사가 없다’라는 메시지를 전했을까? 그런 행태는 정권이 직면했던 딜레마의 논리적 귀결 아니었을까?

미국의 사례도 다르지 않다. 2022년 미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타이완을 전격 방문함으로써 미중관계가 급속히 경색된 바 있다. 중국의 민족주의 세력은 타이완 침공을 주장하고, 심지어 펠로시가 탑승한 비행기를 격추해야 한다고까지 위협했을 정도다. 바이든 정권은 중국의 반발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이미 정부 내에서도 펠로시 방문의 정치적 여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그 후과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바이든 정권이 펠로시의 타이완 방문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았던 것은 당시 미국 내 점증하는 ‘반중 정서’와 동떨어져 생각하기 어렵다. 

미 하원 116차 회기(2019~2021)에서는 무려 465건의 중국 견제 법안이 발의됐다. 이후 회기에서도 대중국 견제 법안 발의 경쟁은 계속되었다. 실제로 최종 입법화된 법안이 그 중 극히 일부라는 사실은 중국 때리기가 미 정가에서 정치적으로 소비되었음을 보여준다. 여론도 펠로시의 방문에 우호적이었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달린 수천 개의 댓글은 펠로시의 방문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바이든 정권은 이러한 미국내 정치상황을 무시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11월 중간선거도 다가오고 있었다.

이들 사례 외에도 미중 갈등이 국내정치적으로 소비된 사례들은 다수 존재한다. 한국 전쟁 시기 트루먼 정권의 타이완 해협 봉쇄와 마오 정권의 ‘항미원조’ 담론 유통, 1958년 진먼도 포격 사건, 1999년 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 폭격 사건 등이 그 사례다. 이들 사례에서 미중 간 대립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양국의 통치권력이 직면했던 각각의 국내정치 상황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는 당시 상황을 적확히 이해할 수 없다.


» 미중 갈등이 정당화하는 빵의 통치

미중 갈등이 정치적으로만 소비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도 소비된다. 자본의 이익을 증진함으로써 경제를 부양하고, 이를 토대로 대내 지지를 확보하는 전략이다. 특히, 중국위협을 명분으로 국방산업을 강화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미국의 ‘군사 케인스주의’ 전략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국방산업은 그 특성상 자국 내 일자리 창출이 확실하며, 또한 안보를 명분으로 증세나 예산 확보가 쉽다는 ‘탁월한’ 장점도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2차 대전기 뉴딜정책에서 본격화된 군사 케인스주의 전략의 위세는 이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각종 국방보고서 곳곳에는 이러한 군사 케인스주의의 논리가 산재돼 있다. 트럼프 1기 정권의 『국방전략』(2018)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에 가하는 위협뿐만 아니라, 향후 그 위협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강화된 ‘투자(investment)’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바이든 정권의 『국가안보전략』(2022) 역시 대중국 전략의 핵심으로 “우리의 경쟁력, 혁신 역량, 회복탄력성, 그리고 민주주의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미국 우선주의’ 구호 아래 동맹국들의 무임승차를 비판하고 미국의 대외 개입 축소를 외치며 집권한 트럼프 정권조차 오히려 국방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있다는 사실도 동일한 맥락이다. 트럼프 2기 정권은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국위협을 국방력 강화의 명분으로 활용하려 하진 않는다. 그 대신 ‘압도적 힘을 통한 평화’라는 개념하에 더욱 ‘솔직하게’ 국방산업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적 역량은 평시와 전시 모두의 생산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강력한 산업 부문에 달려 있다”라는 논리다. 국방은 곧 경제와 등치된다.     

척당 건조 비용으로 80억 달러나 달하는 최신예 구축함 줌왈트는 왜 취역도 못한 채 ‘가장 어리석은 돈 낭비’라는 조롱을 받을까? 왜 수십 척이 건조된 연안전투함의 상당수가 각종 고장으로 항구에 정박된 채로 있는 것일까? 왜 세계 최고 전투기라는 F22을 서둘러 단종시키고 그 보급형 모델인 F35를 생산하기 시작했을까? F35가 외국과의 공동생산으로 경제적 가치를 훨씬 더 창출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트럼프와 결별한 일론 머스크마저 “최악의 가성비 무기”라고 비난한 F35가 갖는 유일한 효능은 바로 그 탁월한 경제적 가치 창출이 아닐까?  

중국 역시 군사 케인스주의의 효능감을 모를 리 없다. 미국이 선점한 세계 무기 시장에 자국산 무기 판매를 확대하려는 중국의 행태는 이를 시사한다. 심지어 중국은 자국산 무기와 미국산 무기의 호환성 강화를 시도하고 있을 정도다. 

물론, 중국의 군사 케인스주의 전략은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에 비해 ‘광고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미국은 ‘깡패국가’나 ‘글로벌 테러리즘,’ 그리고 ‘중국위협’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명분으로 국방력 강화를 정당화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중국에게는 이러한 명분이 부족하다. 중국이 개혁개방 시기 ‘화평발전’을 강조하면서 국제 관계의 안정과 평화를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시진핑 정권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는 미국의 군사 케인스주의 전략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단지 그 구체적 방법론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군사 케인스주의가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팔아 국방산업을 강화하고 경기를 부양한다면, 일대일로는 소위 운명공동체 건설이라는 평화 증진을 명분으로 경기를 부양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일대일로는 결국 뒤집어 놓은 군사 케인스주의 전략이 되는 것이다.


» 트럼프라는 변수, 미중관계, 그리고 한국

트럼프 변수는 미중관계에도 일정한 영향을 준다. 트럼프 정권은 이전의 미국 정권과 비교해 중국뿐만 아니라 동맹국까지 겁박하고 전방위적 관세와 전쟁까지 서슴지 않음으로써 국제관계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는 강대국의 놀음’이라는 구조 현실주의는 강대국 간 세력관계라는 구조 변인이 정책 결정자 등 개인 변인에 비해 국제정치 분석의 핵심 변인임을 강조한다. 문제는 트럼프라는 인물이 패권국의 최고 결정자라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일정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스스로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도덕성과 생각이 자신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어떻게 집권하게 됐을까? 사실, 그가 집권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위협’이 있었다. 트럼프는 미국민의 일자리를 뺏어간 중국과 그에 동조하는 미 민주당 세력을 공격하면서, 자신이 미국민의 일자리를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하며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포퓰리즘 전략에는 ‘두 가지 기만’이 들어 있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된 것은 애초 값싼 임금을 찾아 미국 등 서방 자본이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한 결과였다는 사실을 은폐한 것이 첫 번째 기만이라면, 자신이 미 제조업을 복원하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기만이다. 2기 집권 2년 차인 현재, 무차별적 관세와 이란 전쟁 등으로 초래된 인플레이션으로 미 대중이 오히려 고통받고 있는 것은 이런 이중 기만의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시진핑 정권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볼까? 드러내놓고 반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나쁜 상황이라 할 수도 없다. 트럼프 정권의 행태로 미국의 동맹관계가 균열되는 상황은 그만큼 중국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집권 이후 다른 국가들이 미국보다 중국을 우호적으로 인식한다는 여론조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중국은 달러패권 체제의 핵심국이기 때문에 미국의 급작스러운 붕괴 역시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트럼프 변수로 인한 미 패권의 균열을 반대할 이유도 없다. “시간은 중국 편”이라는 시진핑의 발언은 이런 중국의 속내를 드러낸다.     

한국은 무엇을 해야할까? 한국은 미중 양국에 대한 유효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라도 미중관계를 적확히 독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진단이 정확해야 비로소 처방도 효과적이다. 주류 시각이 주장하듯이, 미중 양국이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면,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 한쪽에 ‘편승’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 대상은 물론 ‘이기는 쪽’이 된다.

그러나, 미중관계가 그렇게 사활적 경쟁관계가 아니라면 한국의 전략은 훨씬 유연해질 수 있다. 미중 양국이 자본주의 국제질서의 규칙을 충실히 따르며, 상호 간 군사충돌을 극도로 회피하고, 상호 간 갈등이 양국의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소비’되는 측면이 강하다면,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방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럴 경우 한국이 준수해야 할 규칙은 미중 패권 경쟁의 논리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제질서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누구든 전방위적 관계 맺기에 나설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경직된 국가논리에 의해 한국에 압력을 가하려 한다면, 좀 당당하게 미중관계의 민낯을 드러내고 역공을 가할 필요도 있다. ‘너희들은 누구보다 자본주의 국제질서의 규칙을 충실히 따르면서 왜 한국에는 다른 잣대를 들이미느냐?’라는 반격이다. 

물론, 한국 역시 미중 양국과 같이 단일체가 아니다. 한국 내에도 여러 정치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12・3 계엄 사태만큼 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상황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미중관계를 둘러싼 한국의 유효한 전략이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 한국의 외교가 대내 진영논리에 ‘인질’이 되는 상황을 차단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노골적인 혐중 정서를 표출하는 길거리 시위대가 정작 ‘중국산’ 태극기를 흔드는 장면은 단순히 실소를 넘어 곰곰이 성찰해 볼 우리네 자화상은 아닐까?



※ 본 보고서의 내용은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인천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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