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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이후 권력승계와 중국 정치의 변화

  • 등록일

    2026-09-23

2026년 9월호 『인차이나브리프』 저자노트는 『시진핑 이후 권력승계와 중국 정치의 변화』의 필자인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안치영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이 책은 시진핑이 집권한 2012년부터 2026년 초까지 중국 정치의 변화를 지도자 교체와 권력승계 제도의 변화, 권력 집중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특히 시진핑 시기 권력승계 제도가 어떻게 변화하고 권력이 집중되어 왔는지를 분석하는 한편, 중국의 발전 목표 변화와 중국 정치의 이면, 한중관계에 대한 필자의 관점도 함께 제시하고 있습니다.


» 2027년 중공 21차 전국대표대회와 시진핑 4연임 가능성 

2027년은 중국공산당의 21차 전국대표대회(이하 당대회)가 열리는 해이며, 당대회에서 선출된 새로운 중앙위원회에서 중국공산당의 지도부를 다시 선출한다. 중국은 공산당이 이끌어 가는 국가이며 공산당의 지도부가 국가의 지도자를 겸임함으로 공산당의 지도부가 곧 중국의 지도부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반중에다가 혐중 정서까지 더해져 중국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지만, 중국의 변화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대외적 요인의 하나인 만큼 중국의 지도부 교체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다. 중국의 지도부 특히 최고지도자의 교체가 중국의 국내 정책뿐만 아니라 대외정책의 변화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중공의 지도부는 당대회를 계기로 새로 선출되지만, 마오쩌둥 시기에는 종신제였다. 지도자의 연임을 제한할 수 있는 어떤 규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권력 장악과 개혁개방 이후 종신제를 폐지하고 최고지도자를 포함하는 당과 국가 지도자들의 연임을 제한하고 주기적인 교체가 이루어지도록 제도와 규정을 정비하고 관례를 만들어 나갔다. 그에 따라 후진타오까지는 최고지도자를 포함하는 모든 지도자가 기본적으로 중임 후 물러났으며 주기적인 권력 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시진핑은 2018년 개헌을 통하여 최고지도자가 겸직하는 당의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및 국가주석 등 세 가지 직위 중 유일하게 임기 제한이 명기되어 있던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폐지하고,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했으며, 2027년 21차 당대회에서 4연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시진핑의 연임을 막을 수 있는 어떠한 규정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공의 당장에서 종신제를 금지하고 있지만 시진핑의 임기를 제한할 수 있는 어떠한 규정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시진핑의 4연임 여부가 21차 당대회와 관련된 핵심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런데 시진핑의 연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진핑 시기에 이루어진 승계와 관련한 규범과 관례의 변화를 살펴보아야 한다. 덩샤오핑 시기 중임제를 기본으로 하는 제도와 규범이 확립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변화 없이는 시진핑의 연임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그러한 변화를 초래한 요인을 살펴보아야 한다. 시진핑의 연임이 가능하게 한 규범의 변화는 권력 교체를 위한 연임제한에 대하여 시진핑 즉, 최고지도자만을 예외로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시진핑 예외주의는 개혁개방 이후 형성된 권력구조의 변화와 권력 집중과 관련된다. 시진핑 시기에는 당과 중앙과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이 이루어졌다. 승계와 관련된 규범과 관례의 변화는 연임에 대한 제도적 제약과 관련된 것이라면, 권력 집중을 통한 권력구조의 변화는 연임과 관련된 의사결정이 누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가와 관련된다.

연임과 관련된 제도적 제약이 존재하지 않고 권력 집중이 이루어져 연임 여부를 시진핑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었다고 반드시 연임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제 시대 황제도 피할 수 없었던 자연법칙은 시진핑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며, 권력구조도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대중 매체의 발전과 정치 논리의 변화로 중국의 지도자들이 주기적으로 매체에 등장해야 하고 대중과 접촉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중공의 ‘내부’를 구중궁궐처럼 들여 볼 수 없고 ‘내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시진핑의 연임을 제약할 수 있는 내부의 세력 관계와 권력구조 변화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2027년 시진핑의 연임 가능성 자체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시진핑의 연임 가능성을 열어 놓은 시진핑 시기에 이루어진 승계 제도와 권력구조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덩샤오핑 시기에 재구성된 승계 제도와 권력구조와 시진핑 시기에 이루어진 그 변화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것을 통하여 현재 시점에서 왜 시진핑의 연임 여부가 문제가 되는지와 시진핑 시기 이루어진 중국 정치의 변화와 그로 인한 문제에 대한 이해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 덩샤오핑 시기 이후 승계 제도의 재구성

시진핑 시기에는 바라 그러한 덩샤오핑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치개혁의 역전이 이루어졌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승계 제도의 변화와 권력 집중이다. 덩샤오핑은 문혁 이후 문혁이 지도자 개인에게 과도하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권력 집중과 종신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문혁과 같은 정치적 재앙의 재연을 방지하기 위한 정치개혁을 단행했다. 지도자의 종신제를 폐지하고 지도부의 주기적인 교체가 이루어지는 승계 제도와 당정분리를 통하여 당이 일체를 독점하는 현상을 막고 집단지도체제를 통하여 최고지도자 개인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권력 분산이 그것이다. 그러면 우선 승계 제도에서 어떠한 변화가 발생했는가?

시진핑 시기 이루어진 승계 제도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덩샤오핑 시기 이루어진 승계 제도를 알아야 한다. 덩샤오핑 시기에는 종신제를 폐지하기 위해 퇴직 제도와 더불어 새로운 지도자의 육성과 충원을 위한 간부 충원 제도가 규범화된다. 퇴직 제도는 장관급까지 적용되는 퇴직 규정과 그 상위의 당과 국가 지도자에게 적용되는 명문화되지 않은 비공식적인 연령규정이라는 관례가 만들어지며 장관급 이상의 국가 지도자는 1982년 제정된 헌법에 따라 중임제가 규범화된다. 퇴직 규정은 연령 제한 규정인데, 차관급은 60세, 장관급은 65세로 퇴직 연령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장관급의 퇴직은 헌법의 중임제와 퇴직 규정의 연령 제한 등 이중적인 규정을 받는다는 것을 말한다. 다만 퇴직 규정에서 장차관급의 연령 제한은 건강과 업무상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률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국가 지도자는 헌법에 따라 중임제를 따른다. 퇴직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닌 당의 정치국위원급(서기처 서기 포함) 지도자에 대해서는 퇴직에 대한 어떠한 명문화된 규정도 없지만 대부분이 헌법상 국가 지도자 직무를 겸직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중임제의 제한을 받음과 동시에 비공식적 관례인 ‘연령 규정’의 제한을 받는다. 당의 지도자에게 적용되는 연령 규정의 존재에 대하여는 중공이 공식적으로 부인하지만 지도부의 합리적 연령 구조와 연령 기준을 지도부 선발과 퇴임의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삼고 있는 것은 ‘연령 기준’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70세까지만 새로운 임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70세 규정’이나 67세면 유임하지만 68세면 퇴임한다는 ‘7상 8하’가 그것을 말한다. ‘70세 규정’은 엄격하게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1987년부터 대체로 적용되었으며, ‘7상 8하’는 2002년부터 2012년까지는 기계적으로 적용되었고,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도 기본적으로 준수되었다. 이것은 중공의 공식적 입장과 상관없이 ‘연령 규정’이 지도자의 퇴임을 위한 중요한 기준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임기 제한과 연령 규정에 따라 퇴임한 지도자를 대체하기 위한 간부 충원과 육성 제도도 정비된다. 간부 충원과 육성 제도는 우수한 간부를 선발하여 육성 충원하는 제도로 차차기 지도자를 선발 육성을 의미하는 1980년대 초중반의 ‘제3 제대 건설’과 그것을 규범화 체계화한 후계 간부 제도가 확립되었으며, 최고지도자의 교체를 위하여 후계자를 사전에 선발하여 지도부의 일원으로 포함하여 훈련하여 승계하도록 하는 ‘격대지정’의 관례도 확립되었다. 1985년 정치국 위원으로, 1987년 13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각각 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쯔양(趙紫陽)의 후임으로 선임된 후치리(胡啓立), 1992년 14차 당대회에서 장쩌민의 후계자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임된 후진타오(胡錦濤)가 그 사례이다. 후치리나 후야오방 모두 현직자인 후야오방이나 자오쯔양이나 장쩌민이 아니라 덩샤오핑 세대에서 지정하여 선임했기 때문에 ‘격대지정’이라고 했던 것이다. ‘격대지정’의 핵심은 덩샤오핑 세대가 다음 지도자뿐만 아니라 그 다음 지도자까지도 지명했기 때문에 생긴 용어이지만 그 핵심은 현임 지도부 내부에 승계할 차기 지도자를 포함하여 승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후진타오 시기에는 차기 최고지도자의 선임을 극소수 실권자들이 정하지 않고 퇴직 원로를 포함하는 중앙(후보)위원급 이상의 간부들이 일정한 직급과 연령의 간부를 대상으로 하여 투표를 통하여 추천하는 민주추천제가 도입되었다. 비록 제한적 범위에서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자를 극소수의 실권자가 밀실에서 정하지 않고 당의 조직 체계에서 추천 절차를 밟았다는 점에서는 커다란 진전이었으며, 그 결과 시진핑과 리커창이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자로 2007년 1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 시진핑 시기 승계 제도의 변화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리커창으로의 승계가 이루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시진핑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까지 포함하는 모든 지도 직위를 승계함으로써 덩샤오핑 시기 형성된 승계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승계의 제도화와 체계화가 완성된 것으로 보였다. 1987년 덩샤오핑이 다른 당직에서는 물러나면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유지하는 소위 반(半)퇴직을 통한 불완전한 승계가 이루어졌고, 2002년 장쩌민도 덩샤오핑의 사례를 따름으로써 전임자와 후임자의 불편한 동거를 하면서 권력을 불완전하게 행사하는 상황이 종료되었다. 게다가 18차 당대회에서는 시진핑 리커창보다 한 세대 이후인 후춘화(胡春華)와 쑨정차이(孫政才)가 정치국 위원으로 선임됨에 따라 ‘격대지정’에 따른 승계 구조가 형성되어 덩샤오핑 시기에 이루어진 승계 모델이 완성된 것으로 여겨졌다.

2017년 19차 당대회를 전후하여 그러한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다. 2017년 쑨정차이의 낙마는 개인적 문제라고 하더라도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을 승계할 차세대 인사를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임되지 않음으로써 개혁 시기의 전통에 따른 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드러냈다. 그 직후 2018년 3월 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개헌을 통하여 국가(부)주석 임기 제한을 폐지함으로써 시진핑은 자신이 3연임 할 것임을 사실상 선언한 것이었다. 그에 따라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3연임함으로써 덩샤오핑 시기에 확립된 최고지도자를 포함하는 모든 지도자의 주기적 교체와 그것을 위한 기제로서 차세대 지도자를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포함함으로써 승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체계가 무너졌다. 

그런데 시진핑의 3연임이 이루어진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보다 한세대 늦은 딩쉐상(丁薛祥)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임하였지만, 지방에서 근무한 적이 없어 경력상 차기 중국 최고지도자로 부적합하고 직위도 국무원 부총리로 최고지도자 후계자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후계자 부재 상황이 21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유임 가능성을 강화하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중공 지도부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20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의 경우 차세대라고 할 수 있는 60년대 출생자를 유임 2명을 포함하여 모두 10명을 선임함으로써 세대교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시진핑 시기 승계 제도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최고지도자 시진핑 예외주의 혹은 최고지도자 후계의 불확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 ‘연령 규정’도 부분적으로 변화되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는 ‘연령 규정’이 기계적으로 적용되었다고 하면, 19차 당대회부터 부분적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19차 당대회에서는 1948년인 왕치산이 ‘7상 8하’에 따라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났지만 이듬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부주석으로 선출되었다. 이는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발생하였는데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났던 한정(韓正)이 이듬해 국가부주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차 당대회에서는 1953년생으로 ‘7상 8하’에 의한 퇴임 대상이 아닌 류치바오와 장춘센이 정치국 위원에서 물러났는데, 이는 퇴임 연령을 넘지 않으면 모두 유임했던 기존의 관례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연령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연령이 부합하면 반드시 유임시키는 관례를 타파했다는 점에서 인사의 합리화라고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으며 둘은 정치국 위원에서 물러났지만 동급의 국가급 부직은 전국정협 부주석과 전국인대 부위원장으로 옮겨갔다는 점에서 퇴임은 아니었다. 또한 당직에서 ‘7상 8하’를 초과하는 유임이나 선임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때까지는 ‘7상 8하’가 준수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차 당대회에서는 상황이 달라지는데, 리커창은 국무원총리를 연임했다는 점에서 헌법 규정에 따른 퇴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치국 상무위원을 한 번만 하고 퇴임 연령에 도달하지 않은 왕양(汪洋)의 퇴임은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으며, 1950년생으로 72세였던 장유샤(張又俠)의 유임이나 1951년생으로 71세였던 왕이(王毅)의 정치국위원 선임은 ‘7상 8하’가 무력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장관급까지 적용되는 명문화된 퇴직 규정에서도 장차관급에 대하여 업무상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점, 그리고 상술한 인물 외에는 기본적으로 ‘7상 8하’에 따라 인사가 이루어진 점에서 볼 때 인사 연령 기준으로서 ‘7상 8하’ 자체가 무력화되었다고 하는 것은 과도한 평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시진핑 시기에는 지도자 선발 방식과 주체의 변화가 있었다. 기존에는 퇴임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지도자의 유임을 전제로 퇴임하는 지도자들의 후임을 승진 요건에 해당하는 자 중에서 퇴임 원로를 포함하는 실권자들이 협의하여 선임했다면, 후진타오 시기에는 그것을 일정한 범위 내의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투표를 통한 민주 추천을 통하여 후보자를 추천하고 감찰 기구와 조직부의 심사를 거친 후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협의하여 결정하는 방식으로 정했다. 그런데 시진핑 시기에는 추천 방식을 시진핑과 조직 관련자들이 면담을 통하여 추천받아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정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게다가 20차 당대회에서는 면담 대상에서 원로들이 제외되었으며,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협의하여 시진핑이 인사 원칙과 안을 만들었다. 이는 20차 당대회에서 인사 과정에서 원로들이 배제되었을 뿐 아니라 기존에는 정치국 상무위원회였던 인사 주체가 시진핑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승계 제도의 변화에서 핵심은 시진핑의 퇴임에 대한 어떤 제도적 제약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며 인사 권한이 시진핑 개인에게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은 당장에서 종신제를 부정함에도 시진핑의 종신집권을 막을 수 있는 기제가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현재로서는 시진핑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신집권까지 가능할 수 있도록 한 승계 제도의 변화와 인사 권한의 집중은 시진핑 시기에 이루어진 권력 집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권력구조 변화와 권력 집중

덩샤오핑 시기에는 종신제 폐지와 승계 제도의 재구성과 더불어 권력을 분산하는 정치개혁을 단행했다. 그러한 권력 분산은 최고지도자 개인에게 집중된 권한의 분산과 더불어 당이 일체를 독점하고 통제하던 권한을 정부와 기업 및 사회단체에 분산하는 분권화를 포함했다. 전자가 잘 알려진 집단지도체제이며 후자는 정치개혁 핵심의 하나인 당정분리이다. 집단지도체제는 1980년 2월 제정된 「당내 정치 생활에 관한 약간의 준칙」에서 명문화되었으며, 정치개혁은 정치개혁에 대한 강령적 문건이라고 일컬어지는 1980년 8월 덩샤오핑의 연설 「당과 국가 영도 제도의 개혁」에서 명문화된 것이었다.

그런데 시진핑 시기에는 당정 분리는 없고 당정 업무 분담만 있을 뿐이라면서 당정 분리를 부정하였다. 당정 분리는 덩샤오핑에 의하여 제기되고 1987년 자오쯔양이 핵심적인 정치개혁 의제로 채택하였지만 19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사실상 후퇴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덩샤오핑이 제기한 강령적 성격의 문건에 명문화되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19차 당대회에서 당장 개정을 통하여 문혁 시기에 그 완전한 표현이 등장한 “당과 정부와 군대와 민간단체와 학교, 동서남북과 중앙에서 당이 일체를 영도한다.”라는 표현이 명문화하여 당의 일체에 대한 영도를 명확히 했다.

 또한 집단지도체제를 명시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2016년 「새로운 형세 하 당내 정치 생활에 관한 준칙」을 제정하여 당 중앙의 권위 수호와 사실상 집권을 강조하는 민주 집중제를 강조하였다. 이 시기만 하더라도 집단지도체제의 유효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당 중앙 권위 수호”가 시진핑의 권위의 강화와 권력 집중을 의미한다는 것은 19차 당대회가 지나서야 명확해졌다. 19치 당대회 이후 시진핑 개인의 권위의 강화와 개인으로의 권력 집중을 의미하는 “시진핑 총서기의 당 중앙 핵심, 전체 당의 핵심 지위를 견결하게 수호하고, 당 중앙의 권위와 집중 통일 영도를 견결하고 수호한다.”라는 소위 ‘두 개의 수호’가 당의 문건으로 명문화되었기 때문이다.

뒤이어 “시진핑 동지의 당 중앙의 핵심 지위와 전체 당의 핵심 지위를 확립하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지도 지위를 확립한다.”라는 시진핑 개인의 권위와 권력을 훨씬 더 강조하는 ‘두 개의 확립’이 제기된다. ‘두 개의 확립’은 시진핑 ‘동지’라는 개인의 핵심 지위 확립과 시진핑이라는 개인의 이름이 들어간 사상의 지도 지위 확립이라는 점에서 시진핑 개인으로의 권력과 권위의 집중과 강화를 의미한다. ‘두 개의 수호’는 20차 당대회에서 당장에 명기되었으며, ‘두 개의 확립’은 당의 문건에 명기되고 반복적으로 강조되기는 했지만 당장에는 표기되지 못했다.

‘두 개의 수호’와 ‘두 개의 확립’의 제기 그리고 시진핑 개인의 권위와 권력에 대한 강조는 집단지도체제가 무력화되었으며 시진핑 개인에게로 권력과 권위가 고도로 집중된 체제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앞에서 언급한 중국 지도부 인사 결정을 시진핑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하나라면 최고지도부 구성원인 정치국 상무위원의 직무에서도 잘 드러난다. 집단지도체제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은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 그런데 20차 당대회 이후 정치국 상무위원인 차이치(蔡奇)가 당 총서기의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았다. 정치국 상무위원이 중앙판공청 주임이나 업무 부서의 장을 맡는 것은 마오쩌둥 시기에도 없었던 일이었다. 유일하게 예외였던 시기가 1977년 11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임된 왕동싱(汪東興)이 1978년 말까지 중앙판공청 주임을 계속 겸직한 적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화궈펑(華國鋒)체제에서 왕동싱은 비서실장으로서 역할을 하였다기보다 오랫동안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으면서 형성한 자신의 세력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성격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치국 상무위원인 차이치를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선임한 것은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과 자신이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시진핑 시기에 당의 역할과 기능이 다시 당이 일체를 영도하도록 변화되었으며, 집단지도체제가 해체되고 시진핑 개인이 인사권과 권력을 독점하고 사상적 권위를 독점하는 등 1인 체제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2027년 개최될 21차 당대회의 인사는 시진핑이 결정할 것이며 시진핑의 유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시진핑이 반드시 유임할 수 있다거나 유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시진핑은 2027년 유임할까?

시진핑의 유임 여부에 대하여 2027년 21차 당대회가 끝날 때까지 논란이 잦아들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시진핑의 유임에 대한 제도적인 제약이 존재하지 않고 시진핑이 인사 결정권을 갖는다는 점에서 시진핑의 유임 가능성을 높게 보는 예측이 많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심판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으며 중국의 지도자는 외빈 접견은 물론 주기적으로 지방을 시찰하면서 주민과 접촉해야 하고, 무수한 회의에 참석하고 무수한 문건을 비준해야 하는 극한 직업이기도 하다. 시진핑은 승계 제도와 관례를 바꾸어 스스로 퇴로를 막아 내릴 수 없는 호랑이 등에 탔지만 그것이 무기한이 될 수는 없다.

제도적으로나 권력구조의 측면에서는 유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지만, 시진핑의 퇴임 또는 부분적인 권력 이양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게 하는 요인들도 있다. 우선은 시진핑의 건강 문제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2027년 시진핑의 대외 활동이 감소하였으며, 특히 지방 시찰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또한 텔레비전 화면에 보이는 모습도 이전과는 차이가 나며, 이제 시진핑이 비행기 트랩을 내리는 장면을 뉴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노령화와 과로가 겹친 결과일 것이다. 반론도 있을 수 있다. 10월 20기 5중전회 개최가 결정된 이후 8월 말부터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것이 그것이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키르기스스탄과 이집트를 방문했는가 하면, 중순에는 인도, 하순에는 미국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그것은 힘든 여정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 건재하다는 증거이거나 건재하다는 것을 보이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시진핑의 권력과 인사권의 독점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권력의 누수 현상과 인사 실패가 드러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군부 문제이다. 시진핑은 2015년부터 군대 개혁을 단행하여 미증유의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군부를 굳건하게 장악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20차 당대회에서 자신이 인선한 군대의 최고 지휘 기관인 중앙군사위원회는 자신과 장성민(張升民)을 제외한 5인이 낙마하였을 뿐만 아니라 결원에 대한 충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군대의 지휘부가 해체되었는데 수습하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중 허웨이둥(何衛東)과 묘화(苗華), 장유샤(張又俠)와 류전리(劉振立)의 숙청 사유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책임제와 당의 군대에 대한 절대적 영도라는 시진핑 시기 확립된 군대에 대한 영도 제도를 훼손하려고 했다는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최소한 군부의 지휘부가 시진핑과 불화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인사 문제는 군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20차 당대회 이후 중공과 중국의 지도부는 시진핑이 직접 인사를 했지만 2023년 임용된 지 4개월도 되지 않아 국무위원이자 외교부장이었던 친강(秦剛)의 낙마를 비롯하여 시진핑의 측근으로 알려진 마싱루이(馬興瑞)가 체포되는 등 인사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중국 내부에서는 시진핑이 부패 문제에 대하여 측근에 대하여도 무관용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독점적인 인사권 행사의 실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보았을 때 시진핑의 4연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21차 당대회가 끝나고 21차 당대회에서 선출한 새로운 중앙위원회에서 선출한 지도부가 등장할 때까지는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알 수 없었던 블랙박스 내부가 시진핑 시기에 더욱더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 본 보고서의 내용은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인천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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