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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중 100년 2: 냉전 해체와 중국의 부상(1970-2023)

  • 저자

    최종현학술원

  • 역자

  • 출판사

    일조각

  • 출판일

    2023-12-30

  • 등록일

    2024-02-06

책 소개

2023년 1월 최종현학술원은 「한미일중 100년」 컨퍼런스에서 1876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조약인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체결 이후부터 최근까지 한미일중 관계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심층적으로 논의하였다. 지난 100여 년의 역사를 크게 일본 제국주의 시기, 미소 냉전 시기, 냉전의 이완과 해체 시기, 탈냉전과 중국의 부상 시기로 나누어 학자, 외교관, 언론인 등 42명의 전문가가 발표하고 토론한 내용을 두 권의 책으로 출간하였다. 그중 2권 『한미일중 100년 Ⅱ: 냉전 해체와 중국의 부상(1970-2023)』은 1970년대 이후 데탕트를 거쳐 오늘날 탈냉전 시기에 이르기까지 동북아를 중심으로 세계 정세의 변화를 분석하고 있다. 또한 그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하면서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고, 현재를 진단하고 향후 전망과 함께 제언도 내놓고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최종현학술원

최종현학술원(Chey Institute for Advanced Studies)은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 20주기를 기념하여 2018년 출범한 지식교류 플랫폼이다. 급변하는 한반도와 주변 강대국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과학기술 혁신이 가져올 글로벌 차원의 도전과 기회요인을 분석하며 냉철한 현실분석과 전략수립을 위한 담론을 이끌어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의 세계적인 대학, 연구소 및 싱크탱크와 협력하며 새로운 지식사회를 구축하고, 미래의 변화를 주도할 혁신적 과학기술 연구와 인문사회 분야와의 창의적인 학제 간 연구를 지원하여 글로벌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며, 대한민국과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번영 달성을 위한 방향과 전략을 제시하는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새로운 지식 창출과 확산에 기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추진 중이다.

 

지은이 발제자 및 토론자

강태웅(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김명섭(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민석(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상근 부회장) 김숭배(부경대 일어일문학부 교수)

김승영(일본 간사이외국어대 교수) 김용호(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장)

김재철(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김종학(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한권(국립외교원 인도태평양연구부 교수) 남기정(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남정호(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마상윤(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박영준(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박원곤(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박인국(최종현학술원장, 前 주UN대사) 박지향(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박철희(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박태균(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송민순(前 외교부 장관) 신각수(前 주일대사)

신성호(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심규선(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

안호영(前 주미대사) 우승지(경희대 국제학부 교수)

윤영관(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이동률(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이미숙(문화일보 논설위원) 이완범(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

이원덕(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이재승(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이홍구(前 국무총리) 이희옥(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혁백(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장 훈(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전재성(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정병준(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정재정(서울시립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조명철(고려대 사학과 교수)

조양현(국립외교원 인도태평양연구부 교수) 차태서(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하영선(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홍용표(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책 속으로

부시 행정부 당시 국제적인 탈냉전의 흐름 속에서 한반도 정세도 급변했다. 1991년 9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고, 12월에는 상호불가침을 약속한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한편 부시 대통령이 1991년 9월 27일 전 세계의 모든 지상 및 해상 발사 단거리 전술핵무기를 철수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1992년 1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의 채택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남북 관계의 가시적 진전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1992년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되었다. 1992년 5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의 영변 원자력시설에 대한 사찰을 벌인 결과 신고되지 않은 플루토늄 추출량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인데, 이후 IAEA가 북한에 특별사찰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임의로 탈퇴하면서 제1차 북핵위기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는 국제적 난제인 북핵 문제가 등장했다.

- 제10장, 53~54쪽 -

 

1989년 이후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연이어 한국과 수교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유독 가장 뒤늦게 한국과 관계정상화를 했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고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던 만큼 한국과의 수교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중국이 한국과의 수교를 지연시켜 왔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북한 요인’ 때문이었다. 중국은 ‘북한발 안보 불안’에 대한 우려가 사실상 한국과의 수교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중국이 한국과의 경제협력 수요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치적’ 수교에 이르기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었다. 즉 남북한 관계 개선, 그리고 나아가 남북한이 상호 정치 실체를 인정하고 국제사회로부터도 사실상 ‘투 코리아 (Two Korea)’가 수용되어 중국의 ‘북한 부담’이 완화되는 것이었다.

- 제11장, 81쪽 -

 

1991년 1월 걸프전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지역분쟁은 세계평화 및 안전보장 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역할에 대해서 관심을 촉발시킨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미국 등의 공헌 요구에 대해서 파병이 아닌 재정적 지원으로 일관한 결과, 130억 달러에 달하는 전비를 부담하였으면서도 국제사회로부터 일본의 협력은 ‘너무 작고도 너무 늦은’ 대응이라는 비판이 쇄도하였다. 이는 탈냉전의 새로운 국제환경 속에서 일본이 추구해야 할 국가노선에 대한 국민적 논의를 촉발시켰고, 그 중심에는 ‘평화국가’ 일본의 취약성이 있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냉전 해체 후의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전망과 대응 전략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 채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했던바, 이를 계기로 새로운 국가전략의 모색이 본격화하였다.

- 제12장, 120~121쪽 -

 

대한민국 정부는 탈냉전의 분위기에 맞추어 공산권 국가와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당국은 경제력을 지렛대로 써서 적극적인 북방외교를 펼쳤다. 특히 소련과는 1990년에, 중국과는 1992년에 수교가 이루어졌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북방외교, 중국의 개혁·개방과 북방외교의 만남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중국의 경우, 베이징은 대만을 고립시키고, 천안문 사태 이후 국제사회 고립에서 벗어나길 고대하고 있었다. 속칭 ‘북방’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륙세력과 교류가 트이면서 기존 해양세력과의 협력에 더하여 한국 외교의 지평이 넓어졌다.

- 제13장, 149쪽 -

 

한국의 대중국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한국의 대미 인식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주장과 평가가 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나 바이든 정부 모두 ‘자유주의’라고 쓰고 ‘중상주의’로 읽고 있고, ‘가치외교’라고 쓰고 ‘진영외교’, ‘이념외교’로 읽고 있으며, 인권 등 보편적 규범을 강조하고 있으나 자국중심주의에 매몰되어 규범 밖에서 행동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이중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중국 학계와 한국 학계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중국과 미국을 대립항으로 설정해 놓고 선택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 자체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 것입니다.

- 제3부 토론, 173쪽 -

 

새로운 지역 범주로서 ‘인도-태평양’은 본래 21세기 초 일본(과 호주)의 선도적 구상에서 기원한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초 아시아 순방 도중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이란 문구를 사용하면서 신흥 지정학 언어로 부각되었고, 이어 미군의 태평양사령부(USPACOM)가 인도태평양사령부 (USINDOPACOM)로 개명되는 등 ‘인태’는 새로운 전략공간 개념으로서 그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취한 아시아 정책의 원칙적 변환을 대표하는 용어로서 인태가 자리매김하게 된 셈이다. 정리하자면, 그동안 널리 사용되었던 ‘아태’가 다자간 제도 구축을 통해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증가시키는 자유국제주의적 지역구상에 기초한 반면, ‘인도-태평양’ 개념은 인도까지 대중국 세력균형연합에 포함시켜 중국의 군사력 증가와 소위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견제하고자 하는 지정학적 이니셔티브라는 점에서 큰 차별성이 존재한다.

- 제14장, 212쪽 -

 

2010년대를 관통한 일본의 전략적 구상은 한미일중 관계에 새로운 역학을 만들어 냈다. 일본은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글로벌화하면서 대국 외교에 시동을 걸고 국제문제에 대한 적극적 발신자가 되고자 하였다. 이는 적극적 국제 외교의 모습이었다. 반면, 중국에 대한 견제의 축을 중일 양자 간 관계에 국한하지 않고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광역적 무대에서 주도적으로 견인하려 한 점은 일본의 새로운 전략적 시도였다. 중일 간의 경쟁과 갈등은 미중 간의 경쟁과 갈등에 선행한 것이었다. 한편, 2010년대 일본은 중국과의 대립과 알력에 그치지 않고, 한국과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에 대한 거리두기 전략도 동시에 전개함으로써 동북아시아 국가군 전체를 타자화하는 함정에 빠진 것도 사실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납치 문제를 앞장세우고, 핵과 미사일 이슈를 부각시켰고, 한국에 대해서는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 자국 국민들을 결속시키는 데 활용하였지만, 일본이 한반도 전체와 전략적으로 사이가 벌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 제15장, 241쪽 -

 

탈냉전 시기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블록의 붕괴는 중국에서 공산당 1당지배체제의 근간인 공산주의 사상이 가진 정치적 역할의 축소를 불러왔다. 특히 외부적으로는 냉전 시기 이념의 경쟁이 끝나 가며 소련과 동유럽에서의 공산주의 실험이 결국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미국 및 서구 국가들의 평가에 더하여, 내부적으로는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며 중국의 젊은이들이 더 많은 자유화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모습은 중국공산당 지도부에 커다란 정치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덩샤오핑은 자신의 숙원인 개혁·개방 정책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기 전에 천안문 사태의 유혈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좌초할 위험이 부상하자, 이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한국과의 수교와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중략). 그리고 중국은 궁극적으로 유럽 선진국 및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며 개혁·개방 정책을 다시금 정상 궤도에 올렸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탈냉전 초기에 맞이했던 대내외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1990년대 들어와 ‘중국의 부상(Rise of China)’이라는 눈부신 경제성장기에 접어든다.

- 제16장, 251쪽 -

 

탈냉전 이후 지난 30년 북한의 대외정책은 남한을 비롯한 미국, 일본, 서방국가와 관계 개선을 모색하여 주어진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실리외교와 핵 개발로 야기된 적대외교를 반복하는 형태를 보여 왔다.

탈냉전 이후 소련을 비롯한 주요 동맹국을 상실하고 최대 우방국인 중국이 한국과 수교하는 등 최악의 대외환경을 맞이한 북한은 실리외교를 선택하여 한국, 미국, 일본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결국 1993년 NPT 탈퇴를 선언하고 핵 개발을 시도하는 적대외교를 펼쳤다. 2000년대도 유사한 형태가 반복되어 남한과 관계는 유지하였지만, 1994년 체결된 제네바합의를 무력화하는 2차 북핵위기를 통해 적대외교를 강화하였다. 김정은 시기도 출범 직후 2012년 미국과 2·29합의를 체결하는 실리적 모습을 보였으나, 2018-2019년을 예외로 지금까지도 핵을 품은 적대외교가 대외정책의 핵심으로 기능한다.

- 제17장, 345~346쪽 -

 

일본이 추구해 온 강대국 외교정책 가운데서도 아베 내각의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지역 질서를 재편하려는 시도는 외견상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 더 굳건해진 미일동맹이 중국과 대치하는 지금의 상황은,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일본이 지녔던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강대국 협조 체제’의 출현과 이에 따른 일본의 소외라는 우려를 상당 부분 해소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더해 일본은 자국의 국제적 역할을 더욱 확대했다고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구상을 상당 부분 반영한 지금의 지역 구도가 과연 일본뿐 아니라 지역 국가들에도 축복이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 제4부 토론, 318쪽 -

 

전통적인 유럽 열강을 몰아내고 독립을 하면서 북미대륙의 서북부를 통합한 미국의 입장에서는 태평양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를 위해 필리핀 및 일본과의 관계 설정에 주력합니다. 그 이유는 이 두 나라가 향후 미국이 광활한 태평양 진출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식량, 물, 연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요인이 필리핀과 일본을 미국의 핵심 이익으로 결정하는 데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 당시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부차적(secondary)’ 이익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한국이 일본과 근접해 있어 일본하고만 관계가 좋으면 굳이 한국과 적극적인 관계 유지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과의 외교관계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보조적인 수단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유지했다고 보겠습니다.

- 좌담회, 346-347쪽 -

 

과거 100여 년 전, 1900년대 초반 미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와 조우했던 때로부터 시작해서 미국이 이 지역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시점까지 미국의 개입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 이 시대의 핵심적 특성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한국도 미국에 의해 수동적으로 이끌려만 온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이해당사자로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대중국 봉쇄’, ‘소련 해체’, ‘잃어버린 20년의 일본’, ‘미·중 분쟁 격화’로 이어지는 시대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국가 어젠다 개발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왔다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지정학적 위치로나 경제적 위치, 특히 첨단기술 분야에서 일본에 못지않은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점이 이 시대의 또 다른 특성이라고 봅니다.

- 좌담회, 357쪽 -

 

출판사 서평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둘로 나뉘어 팽팽히 대립해 온 냉전 상태가 1970년대 들어 긴장이 완화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러한 데탕트 시대가 열리자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 역시 고립과 폐쇄에서 탈피하여 경제발전 중심의 개혁·개방 체제로 전환하는 한편, 미국과의 데탕트, 유엔 가입 등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였다. 이러한 국제질서의 변화에 일본은 미국 일변도의 외교를 극복하고 다변화를 시도하고 국익을 우선하며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였다. 미소, 미중 데탕트로 인해 한국은 자주국방과 자주외교를 모색하고 남북대화를 진행하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탈냉전기가 진행되면서 국제정치는 냉전기와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였다. 한편, 2000년대 들어 중국의 부상과 함께 탈냉전 시기가 종식되면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는데, 유럽에서는 NATO의 동진으로 러시아의 반발에 직면하고,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부상으로 미중 간의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다양한 양자동맹, 지역동맹을 맺으며 협력과 경쟁을 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북핵위기로 인한 안보 불안도 겪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은 국외의 위험 요인들에 둘러싸인 채 국내적으로는 권위주의와 독재, 인권 등의 문제를 극복하며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여 왔다.

『한미일중 100년 Ⅱ: 냉전 해체와 중국의 부상(1970-2023)』은 냉전 상태가 이완되고 탈냉전 후 최근까지 미국, 중국, 일본이 취한 정책을 분석하여 그들이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살펴보고, 북한의 핵 개발 문제를 짚어 보고 있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북한과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하는 한국의 선택을 특히 외교적 측면에서 돌아보고 있다. 그리고 컨퍼런스에서 기간별로 다룬 내용을 통시적으로 논의하는 좌담회를 통해 역사적 교훈을 찾고, 현재를 진단하고 향후 우리의 나아갈 바를 전망하고 있다.

※ 「한미일중 100년」 컨퍼런스 내용은 최종현학술원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되어 있다.

(https://www.youtube.com/@cheyinstitute)

 
  • 인사말 …… 최태원
    발간사 …… 박인국
    축 사 …… 이홍구
    …… 하영선

    제3부 냉전의 이완·해체와 한미일중
    요약 … 마상윤
    제10장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1972-1992) … 마상윤
    Ⅰ. 서론
    Ⅱ. 1970년대 데탕트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Ⅲ. 1980년대-1990년대 초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미소 냉전의 해체
    Ⅳ. 결론
    제11장 중국, 대전환의 20년(1972-1992) … 이동률
    Ⅰ. 서론: 대전환의 20년
    Ⅱ. 탈안보위협의 대전환: 중국의 대미 데탕트
    Ⅲ. 탈고립의 대전환: 단계적, 선택적인 국제체제 진입
    Ⅳ. 주변외교의 강화와 한중 수교
    Ⅴ. 결론과 토론
    제12장 데탕트, 신냉전, 탈냉전 시기 일본의 외교(1972-1992) … 조양현
    Ⅰ. 서론
    Ⅱ. 데탕트 전기의 일본 외교: 사토, 다나카, 미키 내각(1969-1976)
    Ⅲ. 데탕트 후기의 일본 외교: 후쿠다, 오히라 내각(1976-1980)
    Ⅳ. 신냉전기의 일본 외교: 스즈키, 나카소네 내각(1981-1987)
    Ⅴ. 냉전 해체기의 일본 외교: 다케시타, 가이후, 미야자와 내각(1987-1993)
    Ⅵ. 결론
    제13장 데탕트, 신냉전, 탈냉전 시기 한국의 외교(1972-1992) … 우승지
    Ⅰ. 서론: 한국 외교의 여정
    Ⅱ. 데탕트 시기 한국 외교(1970년대)
    Ⅲ. 신냉전과 한국 외교(1980년대)
    Ⅳ. 탈냉전과 한국 외교(1990년대 초반)
    Ⅴ. 결론
    토론 … 김승영, 이원덕, 이희옥, 김용호, 박인국, 박태균, 송민순, 신각수, 안호영, 이재승

    제4부 탈냉전과 중국의 부상
    요약 … 박철희
    제14장 탈냉전 시기 미국의 대외전략과 동아시아: 단극구조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 차태서
    Ⅰ. 탈냉전 30년 역산하기
    Ⅱ. 탈냉전 시기 미국 대외전략의 흐름
    Ⅲ. 탈냉전 시기 미국 동아시아 전략의 변동
    제15장 탈냉전 시기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한미일중(1990년대-2010년대) … 박철희
    Ⅰ. 서론: 탈냉전 시기 일본 국가전략의 변화와 시기 구분
    Ⅱ. 1990년대: 미일동맹의 재정의와 아시아 국가들과의 역사 화해 시도
    Ⅲ. 2000년대: 동맹과 다자주의의 결합 속에 중국을 견제
    Ⅳ. 2010년대: 중국의 공세에 대응하는 광역지역전략 구상
    Ⅴ. 결론: 탈냉전 시기를 관통한 일본의 보통국가화
    제16장 탈냉전 시기 중국의 대외전략과 한미일중(1990년대-2020년대) … 김한권
    Ⅰ. 서론
    Ⅱ. 냉전의 종식과 중국 대외전략의 변화
    Ⅲ. 1990년대 장쩌민 시기와 ‘중국의 부상’
    Ⅳ. 2000년대 후진타오 시기, ‘부상’에서 ‘G2’로
    Ⅴ. 2010년대-2020년대 시진핑 시기, ‘도광양회’ 에서 ‘분발유위’로
    Ⅵ. 결론
    제17장 탈냉전 시기 북한의 대외정책: 실리외교와 적대외교의 부정교합(1990년대-2010년대) … 박원곤
    Ⅰ. 서론: 실리와 핵 개발 동시 추구
    Ⅱ. 북한 대외정책의 원칙: 자주, 친선, 평화
    Ⅲ. 1990년대: 개혁·개방 대 핵무장
    Ⅳ. 2000년대: 전방위 외교와 2차 핵위기
    Ⅴ. 2010년대: 핵 질주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Ⅵ. 결론: 핵 포기 없는 실리외교는 불가능
    토론 … 김재철, 신성호, 김민석, 김숭배, 김승영, 김용호, 마상윤, 박영준, 박인국, 윤영관, 이미숙, 임혁백

    좌담회 한미일중 100년의 교훈
    토론 … 박인국, 박영준, 전재성, 마상윤
    기획 및 편집 …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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